줄거리[각주:1] "뭐 어디 빈자리가 있어야지." K 사장은 안락 의자에 파묻힌 몸을 뒤로 벌떡 젖히며 하품을 하듯이 시원찮게 대답을 한다. 두 팔을 쭉 내뻗고 기지개라도 한 번 켜고 싶은 것을 겨우 참는 눈치다. 이 작품의 주인공 P는 가난한 농촌 출신으로, 한때의 향학열에 들뜬 사람들의 열기에 힘입어 어렵사리 신식공부를 했다. 개화 이후 한국 사회는 이상한 교육열이 팽배해 있었다. 너도 나도 상급학교에 진학을 했고, 그 졸업생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하여 이른 바 지식청년들의 과잉생산 사태가 벌어졌다. 그것을 이 작품에서는 레디 메이드 인생이라 본 것이다. P도 그와 같은 과잉생산된 지식인 청년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일찍 장가를 들어 시골에는 열네 살 된 아들까지 두고 있다. 그는 자신이 주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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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각주:1] 철썩, 앞집 판장 밑에서 물 내리는 소리가 난다. 뿌연 뜨물에 휩쓸려 나오는 것이 여러 가지다. 호박 꼭지, 계란 껍질, 녹두 껍질. "녹두 빈대떡을 부치는 게로군. 흥" 안 초시는 말끝마다 "젠장…" 아니면 "흥!" 하는 코웃음을 붙인다. "추석이 벌써 낼모레지! 젠장…” 안 초시는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신다. 하늘에 조각 구름이 여기저기 널려있다. "이사는 팔 하고 사오는 이십이라 천이 되지… 가만… 천이라? 천에 사를 하면 사천 평… 한 평에 주려 잡아 오 환씩만 남는다 해두…" 안 초시가 주먹구구로 얻어 낸 총액은 일만 구천 원이다, 천 원을 들여 일만 구천 원을 만들려는 심속이니, 만 원을 들이면 얼마가 되는가. 그는 벌떡 일어난다. 주머니에는 단돈 십 전뿐이다. 그것도 안경다..
작품해설[각주:1] 1929년 4월 『조선지광』에 발표된 한설야의 단편소설. 한국문학사에서 1920년대 신경향파문학을 한 단계 마무리하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작품은 주인공이 조선에서의 궁핍한 생활을 청산하고 만주로 이주한 후 그곳에서의 생활 역시 더욱 힘들다는 사실을 깨닫고 형제와 친지들이 사는 고향으로 다시 귀향한다는 간단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작품의 내용은 첫째 당시 최서해로 대표되는 신경향파소설이 주로 전망이 없는 폐쇄된 만주체험만을 다루고 있다면, 이 작품은 그 생활을 포기하고 귀향을 감행한다는 점, 둘째 귀향한 주인공이 어쩔 수 없이 노동자가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몇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는 이미 조선의 농촌사회가 붕괴되어 가는 한편 노동자계층이 급속하게 증..
줄거리[각주:1] 내가 이런 글을 끼적거리게 된 건 오랫동안 교원노릇을 하며 알게 된 한 소년과 그의 젊은 홀어머니, 할아버지, 그들이 살아오던 낙동강 하류의 어떤 외진 모래톱-이들에 관한 그 기막힌 사연들조차, 아득한 옛날 이야기처럼 세상에서 버려져 있는데 대해서까지는 차마 묵묵할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건우란 소년은 내가 직접 K중학에서 담임하던 제자다. 비가 억수로 내리던 날 지각을 한 건우에게 늦은 이유를 묻자 나룻배 통학생이라며 무엇인가를 하소연하는 것 같았다. 나는 건우 아버지가 안 계신다는 걸 안 뒤로 은근히 동정이 가게 되었다. 그것은 건우가 써온 '섬얘기'라는 글을 읽고부터였다. 평화로운 자기고장 -갖은 풍파와 홍수를 겪어 오는 동안 모래가 밀려서 된 나라 땅인데 유력자가 통째로 삼키려..
마인드맵 프롤로그[각주:1] "幻(환)의 의미는 변한다는 것인데 어찌보면 반복이기도 하다. 어떤 써클...조금씩 원이 다르게 그려지면서도 원이란 형태로 반복되는 것이다. 그게 대를 이으며 내려오는 여자의 인생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원을 다르게 그릴 수 있는가? 내가 고민하는 건 언제나 그거였다. 나는 내가 원하는 원을 그릴 수 있는가...?" 줄거리[각주:2] (붉은색 글은 제가 보충한 내용입니다.) 1 언젠가 당신은 제게 나이 들어가는 여자의 떨림을 한번 써 보라고 말하셨습니다. 저는 그 얘기를 지나쳐 들었습니다, 라기 보다 글이라고는 편지와 일기 정도밖에 써 보지 못한 제가 어떻게 그런 것을 쓸 수 있을까 두려운 마음이 앞섰습니다. 저는 이제껏 마흔 세 살이라는 나이가 되도록 단 한번도 스스로를 여자..
줄거리 소설가인 나는 어느 날 옛 친구인 은자로부터 전화를 받게 된다. 은자는 내가 그녀를 기억하지 못할까 걱정했지만 그녀는 내 유년의 기억 속에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었기에 나는 곧 그녀를 알아보게 된다. 어릴 적부터 노래를 곧잘 부르던 그녀는 현재 밤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다. 그녀는 자신이 일하는 곳으로 꼭 찾아오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은자를 만나려고 하지 않는다. 그녀는 바로 변해버린 고향의 아름다운 과거를 떠올릴 수 있는 마지막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문득 큰오빠의 삶의 무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지금은 무기력한 존재가 되었지만, 그는 과거에 허망하게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나를 비롯한 여섯 동생을 혼자 힘으로 길러낸 신화적인 인물이다. 그 큰오빠가 지금은 삶의 목표..
줄거리[각주:1] 젊은 소설가 구보는 매사에 의욕을 갖지 못한 룸펜이다. 그의 어머니는 하릴없이 집을 나서는 아들을 염려해서, 등뒤에 대고 "일찌거니 들어오너라" 하면서 얇은 실망감을 숨기지 못한다. '직업과 아내를 갖지 않은, 스물 여섯 살 짜리 아들은, 늙은 어머니에게는 온갖 종류의 근심, 걱정거리였다. 우선 낮에 한번 집을 나서면 아들은 밤늦게나 되어 돌아왔다.' 혼인을 시키면 제 계집 귀여운 줄을 알아 자연 돈 벌 궁리를 하겠지 싶어 권할라치면, "돈 한푼 없이 어떻게 기집 멕여 살립니까?"가 그 대꾸이다. 월급 자리를 구할 생각은 없이, 집에선 책이나 읽든가 글을 쓰다가 나가면 밤중까지 쏘다니니 보기에도 딱했다. 때로 글을 팔아 돈 몇 푼을 벌어올 때도 있긴 하다. 그럴 때면 옷감을 끊어서 건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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