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철.카.시 #05 ― 사랑의 기술(1)

목요일 방과후수업 [철학카페에서 시 읽기](link)는 동명의 도서를 함께 읽으며 이야기하는 시간입니다. 

―――


계획대로 수업이 진행되어 5시간만에 Chapter 3으로 들어왔습니다.

이 Chapter의 제목은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로서, '사랑의 기술'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시작은 사랑의 실전(?)에 강했던 샤토브리앙[각주:1]이 왜 그렇게 인기가 많았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으로 플라톤의 <향연>에서 언급된 에로스론을 꺼내들지요.


에로스의 이 같은 본성이 '감각에 의해서 알 수 있는 영역'에서 '지성에 의해서 알 수 있는 영역'으로 올라가는 사다리를 놓아, 우리가 지혜와 선함과 아름다움에서 언제나 더 우월한 대상을 찾아가는 '제2의 항해'를 하도록 합니다.

― <철학카페에서 시 읽기> 107쪽

즉, 사랑이란 '자신보다 좀 더 나은 대상을 찾아가는 여정'이라는 것인데요, 이에 대한 예로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언급합니다.

'나'에게 '님'은 '나'를 귀먹게 하는 '향기로운 말소리'를 가진 존재이고, '나'를 눈멀게 하는 '꽃다운 얼굴'을 가진 존재입니다. 한 번도 이런 관점으로 이 시를 본 적이 없었는데, 새롭고 참신한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 부분.


하지만 책의 저자는 이러한 두 사람의 관계가 보편적이고 정상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위와 같은 생각이 표본으로는 적당하지 않다고 합니다. 유혹을 통해 '이상'으로 이끄는 사랑을 이야기하는데요, 이 역시도 실컷 이야기해 놓고 문제가 있다고 하면서 Chapter 3의 두 번째 장을 마무리합니다.

 

세 번째 장에서 저자는 최승자 시인의 <일찌기 나는>을 소개하고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정리합니다.


최승자, <일찌기 나는> 부분.


나는 샤토브리앙이 여인들에게 이런 구원과 환대를 선물했기 때문에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라고 말하고 그렇게 대함으로써 존재의 의미를 일깨워주었기 때문에, 즉 그녀들을 최승자 시인이 그린 지옥에서 빼내 김남조 시인이 묘사한 천국으로 이끌었기 때문에, "갑자기 그리고 영원히!" 그를 사랑했을 거라고 믿습니다. 

이렇게 비밀이 풀리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다음과 같은 새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그를 그대라고 부르고 그들에게 사랑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실천적인 방침이 무엇이냐는 것이죠. 

  

  1. 프랑수아 샤토브리앙. 프랑스 낭만주의 문학을 선도했던 작가(1768~1848) [본문으로]

이미지 맵

참여/방과후수업 다른 글

이전 글

다음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