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자료/현대문학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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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 어머니의 그륵 (정일근)

어머니는 그륵이라 쓰고 읽으신다그륵이 아니라 그릇이 바른 말이지만어머니에게 그릇은 그륵이다물을 담아 오신 어머니의 그륵을 앞에 두고그륵, 그륵 중얼거려보면그륵에 담긴 물이 편안한 수평을 찾고어머니의 그륵에 담겨졌던 모든 것들이사람의 체온처럼 따뜻했다는 것을 깨닫는다나는 학교에서 그릇이라 배웠지만어머니는 인생을 통해 그륵이라 배웠다그래서 내가 담는 한 그릇의 물과어머니가 담는 한 그륵의 물은 다르다말 하나가 살아남아 빛나기 위해서는말과 하나가 되는 사랑이 있어야 하는데어머니는 어머니의 삶을 통해 말을 만드셨고나는 사전을 통해 쉽게 말을 찾았다무릇 시인이라면 하찮은 것들의 이름이라도뜨겁게 살아있도록 불러 주어야 하는데두툼한 개정판 국어사전을 자랑처럼 옆에 두고서정시를 쓰는 내가 부끄러워진다- 《현대시학》(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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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 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 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 둬라"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하며 다가왔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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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 괜찮아 (한강)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해 질 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버릴까 봐 나는 두 팔로 껴안고 집 안을 수없이 돌며 물었다 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 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말해봤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 ​거짓말처럼 아이의 울음이 그치진 않았지만 누그러진 건 오히려 내 울음이었지만, 다만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며칠 뒤부터 아이는 저녁 울음을 멈췄다 ​서른 넘어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 가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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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 버릇 (권창섭)

창섭: 엄마, 나 이제 손톱도 혼자 깎을 줄 알아요엄마: 너는 다 자랐구나.창섭: 손톱을 깎을 줄 안다는 게 자랐다는 건가요엄마: 제 몸이었던 것을 버릴 줄 안다는 걸 성장했다고 한단다.창섭: 이상해요 자란다는 건 버리는 게 아니라 커져가는 게 아닌가요엄마: 불필요한 건 버려야 필요한 것들이 커져간단다.창섭: 전 이미 똥도 오줌도 버려온걸요엄마: 그건 나온 것이라고 한단다.창섭: 엄마는 나를 버렸어요엄마: 그건 낳은 것이라고 한단다.창섭: 엄마, 나는 손톱을 먹을 줄도 알아요엄마: 발톱을 먹을 수는 없잖니? 그런 건 버릇이라고 한단다.창섭: 저는 자꾸 자라나는 버릇이 있어요엄마: 고치지 않을 것이잖니? 그렇다면 버릇이 아니란다.창섭: 엄마는 아니라고 할 줄밖에 몰라요엄마: 너는 내 안에 있었단다.창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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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소설] 메밀꽃 필 무렵 (이효석)

여름 장이란 애시당초에 글러서, 해는 아직 중천에 있건만 장판은 벌써 쓸쓸하고 더운 햇발이 벌여놓은 전 휘장 밑으로 등줄기를 훅훅 볶는다. 마을 사람들은 거지반 돌아간 뒤요, 팔리지 못한 나뭇군패가 길거리에 궁싯거리고들 있으나 석윳병이나 받고 고깃마리나 사면 족할 이 축들을 바라고 언제까지든지 버티고 있을 법은 없다. 춥춥스럽게 날아드는 파리떼도 장난군 각다귀들도 귀치않다. 얽둑배기요 왼손잡이인 드팀전의 허생원🧔‍♂️은 기어코 동업의 조선달👨‍🦱에게 낚아보았다.  “그만 거둘까?"  “잘 생각했네. 봉평장에서  한번이나 흐뭇하게 사본 일 있을까. 내일 대화장에서나 한몫 벌어야겠네. "  “오늘밤은 밤을 새서 걸어야 될걸?"  “달이 뜨렷다?"  절렁절렁 소리를 내며 조선달👨‍🦱이 그날 산 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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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사] 구인회

1920년대 계급주의 문학에 대한 안티테제로, 1933년에 순수문학을 표방하며 등장(발기인: 이종명, 김유영). 그러나 3~4년 만에 해체. 항상 9명의 회원 유지 기관지로는 이상과 박태원의 이 유일. 그나마 1집으로 그침. 작품 창작을 위한 동인이라기보다 친목 단체적 성격이 강했음. 일제 치하라는 특수한 근대적 환경 속에서 모더니즘의 이중적 가치(근대부정+근대지향)에 대한 실천 부족과 몇몇 회원의 친일행적이 결국 구인회가 오래 지속되지 못했던 원인이라고 보는 견해 있음. 주요 작가 정보 김기림(1908~?. 시인, 문학평론가) 1936년 첫시집 발표. 해방 후 조선문학가동맹 활동하나, 이후 월남하여 서울대 조교수가 됨. 한국전쟁 때 납북. 엘리엇의 영향으로 주지주의 이미지즘 시 주로 창작. () 내용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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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 산유화(김소월)

산에는 꽃 피네.꽃이 피네.갈[각주:1] 봄 여름 없이꽃이 피네. 산에산에피는 꽃은저만치[각주:2] 혼자서[각주:3]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꽃이 좋아산에서사노라네.[각주:4] 산에는 꽃 지네.꽃이 지네.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각주:5] ― 『김소월 시집』 가을. 운율을 위해 줄임말을 쓰고, 계절의 순서를 바꾸었네요. [본문으로] 고독감. '저만치'는 무엇과 무엇 사이의 거리일까요? 화자와 꽃 사이의 거리일 수도 있고, 꽃과 꽃 사이의 거리일 수도 있겠네요.그러나 어느 쪽으로 보더라도,화자와 꽃은 떨어져 있습니다. [본문으로] 화자가 보고 있는 꽃은 한 송이인가 봅니다. 꽃밭 무리에서 홀로 떨어져 나온 듯한 꽃이었기에 외로움을 느끼는 화자의 눈에 띄었겠지요. [본문으로] '새'가 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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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 국수(백석)

01 눈이 많이 와서 02 산엣새가 벌로 나려 멕이고 03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04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 보다 05 한가한 애동들[각주:1]은 어둡도록 꿩 사냥을 하고 06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 가재미로 가고 07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사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08 이것은 오는 것이다 09 이것은 어늬 양지귀[각주:2] 혹은 능달[각주:3] 쪽 외따른 산옆 은댕이 예데가리밭에서 10 하로밤[각주:4] 뽀오햔 흰 김 속에 접시귀 소기름 불이 뿌우현 부엌에 11 산멍에 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각주:5] 12 이것은 아득한 옛날 한가하고 즐겁든 세월로부터 13 실 같은 봄비 속을 타는 듯한 여름볕 속을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 속을 지나서 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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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소설] 레디메이드 인생(채만식)

줄거리[각주:1] "뭐 어디 빈자리가 있어야지." K 사장은 안락 의자에 파묻힌 몸을 뒤로 벌떡 젖히며 하품을 하듯이 시원찮게 대답을 한다. 두 팔을 쭉 내뻗고 기지개라도 한 번 켜고 싶은 것을 겨우 참는 눈치다. 이 작품의 주인공 P는 가난한 농촌 출신으로, 한때의 향학열에 들뜬 사람들의 열기에 힘입어 어렵사리 신식공부를 했다. 개화 이후 한국 사회는 이상한 교육열이 팽배해 있었다. 너도 나도 상급학교에 진학을 했고, 그 졸업생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하여 이른 바 지식청년들의 과잉생산 사태가 벌어졌다. 그것을 이 작품에서는 레디 메이드 인생이라 본 것이다. P도 그와 같은 과잉생산된 지식인 청년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일찍 장가를 들어 시골에는 열네 살 된 아들까지 두고 있다. 그는 자신이 주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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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소설] 복덕방(이태준)

줄거리[각주:1] 철썩, 앞집 판장 밑에서 물 내리는 소리가 난다. 뿌연 뜨물에 휩쓸려 나오는 것이 여러 가지다. 호박 꼭지, 계란 껍질, 녹두 껍질. "녹두 빈대떡을 부치는 게로군. 흥" 안 초시는 말끝마다 "젠장…" 아니면 "흥!" 하는 코웃음을 붙인다. "추석이 벌써 낼모레지! 젠장…” 안 초시는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신다. 하늘에 조각 구름이 여기저기 널려있다. "이사는 팔 하고 사오는 이십이라 천이 되지… 가만… 천이라? 천에 사를 하면 사천 평… 한 평에 주려 잡아 오 환씩만 남는다 해두…" 안 초시가 주먹구구로 얻어 낸 총액은 일만 구천 원이다, 천 원을 들여 일만 구천 원을 만들려는 심속이니, 만 원을 들이면 얼마가 되는가. 그는 벌떡 일어난다. 주머니에는 단돈 십 전뿐이다. 그것도 안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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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소설] 과도기(한설야)

작품해설[각주:1] 1929년 4월 『조선지광』에 발표된 한설야의 단편소설. 한국문학사에서 1920년대 신경향파문학을 한 단계 마무리하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작품은 주인공이 조선에서의 궁핍한 생활을 청산하고 만주로 이주한 후 그곳에서의 생활 역시 더욱 힘들다는 사실을 깨닫고 형제와 친지들이 사는 고향으로 다시 귀향한다는 간단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작품의 내용은 첫째 당시 최서해로 대표되는 신경향파소설이 주로 전망이 없는 폐쇄된 만주체험만을 다루고 있다면, 이 작품은 그 생활을 포기하고 귀향을 감행한다는 점, 둘째 귀향한 주인공이 어쩔 수 없이 노동자가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몇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는 이미 조선의 농촌사회가 붕괴되어 가는 한편 노동자계층이 급속하게 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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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소설] 모래톱 이야기(김정한)

줄거리[각주:1] 내가 이런 글을 끼적거리게 된 건 오랫동안 교원노릇을 하며 알게 된 한 소년과 그의 젊은 홀어머니, 할아버지, 그들이 살아오던 낙동강 하류의 어떤 외진 모래톱-이들에 관한 그 기막힌 사연들조차, 아득한 옛날 이야기처럼 세상에서 버려져 있는데 대해서까지는 차마 묵묵할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건우란 소년은 내가 직접 K중학에서 담임하던 제자다. 비가 억수로 내리던 날 지각을 한 건우에게 늦은 이유를 묻자 나룻배 통학생이라며 무엇인가를 하소연하는 것 같았다. 나는 건우 아버지가 안 계신다는 걸 안 뒤로 은근히 동정이 가게 되었다. 그것은 건우가 써온 '섬얘기'라는 글을 읽고부터였다. 평화로운 자기고장 -갖은 풍파와 홍수를 겪어 오는 동안 모래가 밀려서 된 나라 땅인데 유력자가 통째로 삼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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