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평소 즐겨보는 칼럼 사이트이다.

특히 김경범 서울대학교 교수님의 글을 무척 좋아한다.

 

이곳에 얼마 전 이런 글이 올라왔다. ― 

‘과세특’이 초래한 암묵적 교육과정, 위선조차 필요 없도록 도덕 허물어

 

제목이 담고 있는 현실인식과 문제의식에는 매우 공감한다. 

그러나 원인 분석과 대안 제시는 너무 아쉽다.

특히 글쓴이가 관찰한 선생님이 ‘자기평가 질문’을 활용하는 것을 보고, 마치 그 질문 자체가 문제인 것처럼 표현한 부분이 적지 않은 것은 매우 유감이다. 

 

실제로 과세특을 써야 해서 너무 바쁘다는 학생들의 책상에는 여러 개의 질문이 빼곡히 적힌 교과별 활동지가 눈에 띄었다. 다음은 여러 과목의 과세특 활동지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질문의 리스트이다.

― 바쁨의 원인이 교과별 활동지에 있는 질문 리스트처럼 보이게 한다.

 

학생은 이러한 질문에 답을 하고, 교사는 활동지를 수거하여 과세특을 작성한다. 질문 자체에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각주:1].

― 글쓴이도 인정했듯이 질문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그런데 그것을 ‘보인다’라고 하면서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뉘앙스를 흘리고 있다.

 

예를 들어, 앞서 제기된 자기성찰 질문 중 ‘이 과목에서 배운 내용을 실제로 적용한 경험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교사가 과세특을 작성하는 데 활용한다고 생각해 보자. (중략) ..라고 과세특을 기록한다면 그것은 허위 기재가 될 것이다. (중략) ..로 기록한다고 해도 확인할 바 없는 학생의 자기 보고 내용을 기록하는 것이니 과세특 내용으로는 적절하지 못하다.

― 질문은 문제가 없고, 그것을 활용하는 시기와 횟수 검증 방법이 문제임에도 모든 문제의 출발이 질문인 것처럼 오해할 수 있는 표현이다.

 

이처럼 교사의 검증이 부족한 자기평가 내용이 과세특에 반영되면 평가는 객관성을 담보하지 못하게 되면, 형평성의 문제를 갖게 된다. 

― ‘자기평가 내용’은 자기평가 질문에 대한 답이므로 그것이 반영되면 안 된다 혹은 그 질문을 활용하면 안 된다는 것처럼 보이는 문장이다. 그러나 그 질문을 검증하고 여러 번 활용하면 되지 않나? 그 도구를 잘못 사용한 선생님을 문제 삼아야지 마치 자기평가서를 활용하려는 시도 자체가 문제라는 식으로 표현되어 있다.  

 

자기 평가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자신의 역량을 부각시킨 학생에 비해 그렇지 않은 학생은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 학생은 당연히 자기평가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역량을 선생님께 부각시킬 수 있다. 그게 잘못인가? 그걸 묻는 자기평가 질문이 잘못인가? 학생이 쓴 내용만을 토대로 검증 없이 입력하는 선생님이 잘못한 것 아닌가? 관찰과 평가 결과 실제로 역량이 있음에도 자기평가 질문에 제대로 입력을 안 했다는 이유로 기재하지 않는 선생님이 잘못한 것 아닌가? 

 

검증되지 않은 자기평가서릐 내용이 과세특에 반영되는 상황을 반복적으로 경험한 학생들은 어떤 가치관과 태도를 습득하게 될까? 

― 이 부분도 이렇게 썼다면 어땠을까? “자기평가서의 내용을 교사가 검증하지 않고 그대로 반영한다면 이 상황을 경험한 학생들은 어떤 가치관을 갖게 될까?” 

 

그러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부적절한 현상이 너무나 당당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학생들은 거리낌 없이 과세특을 ‘쓴다’고 이야기하고, 온오프라인의 과세특 작성 컨설턴트들은 공개적으로 학생이 과세특 잘 ‘쓰는’ 비법을 이야기한다. 

― 내 생각에는 이 문제의 가장 큰 책임은 교사들에게 있다. 원글을 쓴 선생님께서도 이 글의 앞부분에서 언급했던 바로 그런 선생님들. 뒤에서 이어지는 원인분석에서는 이 내용은 쏙 빠져 있다. 적어도 문제의 원인이 ‘자기평가 질문’은 아니다. 

 

 

이 글에 왜 내가 유감이냐면 자기평가 질문들을 고안하고 제안한 사람이 바로 나인 것 같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한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글의 앞부분에서 인용한 자기평가 질문이 내가 2020년 8월에 쓴 글에서 제안한 질문들과 거의 비슷하다. 이 글에서 내가 제안한 질문들은 서울대학교 입학처 자료에서 추론할 수 있는 평가 항목들을 바탕으로 내가 직접 만든 것이다[각주:2].
  2. 이 문장 때문이다. ”실제로 온라인에는 교사가 아닌 학생을 대상으로 자기 평가서를 활용한 교과세특 ‘쓰기’에 관한 상세한 팁들이 넘쳐난다. 예를들어, ‘자기 평가서를 활용한 교과세특 쓰기’와 같은 제목을 달고 있는 온라인상의 많은 글이 대상으로 하고 있는 독자는 교사가 아닌 학생이다. 글쓴이가 인용한 제목은 내가 2020년에 쓴 글의 제목과 완전히 똑같고 그 제목을 가지고 구글과 네이버에서 검색을 하면 내가 쓴 글만 나오지, 다른 글은 안 나온다. 

 

그러나 내 글은 학생을 대상으로 쓴 글이 아니다. 교사를 대상으로 쓴 글이다. 

그리고 자기평가서를 활용할 때 활용 방법이나 주의할 점을 몇 가지 일러두었는데 다음과 같은 것이다.

 

수업을 마치고 난 후, 또는 수업 활동을 마치고 난 후 자기평가서를 받으면 이를 세특 기록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평가서에 어떤 내용으로 평가문항을 구성할지가 고민이 됩니다. 그래서 서울대 학종 안내서에 있는 학업능력과 학업태도의 평가기준을 참고하였습니다. 
(중략)
이를 활용해 교사는 교과세특을 작성하면서 자신이 작성한 글의 체크리스트로 활용하거나 학생들에게 자기평가표 문항으로 제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편, 학생은 선생님이 써주신 세특을 읽고 자신의 우수성 정도를 확인하는 체크리스트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중략)

위 질문들을 자기평가서로 활용할 때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 수업활동 및 수행평가로 입력할 내용을 제한해야 합니다. 교사가 관찰할 수 없는 내용과 수업 외 활동은 기록할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습니다. 
둘째, 모든 질문을 활용하기보다 해당 수업이나 수업활동의 특성에 맞추어 몇 개의 질문을 선택해서 제시하는 것이 좋습니다. 학생들에게도 모든항목을 기록하려 하기보다 해당하는 내용이 있는 경우만 기록하도록 안내해야 합니다.
셋째, 학생들이 응답할 때 자소서를 쓰듯 개인적인 활동 내용에 치중하지 않도록 해야 하고, 과장되거나 허황된 내용이 없도록 반드시 주의를 주어야 할 것입니다. 
넷째, 반드시 '사실'에 근거해야 하고, 섣부른 평가나 미사여구는 지양해야 할 표현입니다.
다섯째, 반드시 학교교육활동 중 교사 지도 하에 학생들이 직접 작성하도록 해야 합니다. 
(중략)

그런데 사실은,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보다 어떻게 수업을 하느냐의 문제가 더 중요합니다.
수업에 참여하여 학생이 보여준 실제 사례들 중에서 의미가 큰 것을 기록하는 것이 교과세특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세특은 좋은 수업이 낳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결과 중 하나입니다.

 

 

내가 이 글을 쓰던 당시에도 김새로나 선생님이 가졌던 것과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졌더랬다. 그래서 그것을 바꾸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이 글쓰기였다. 잘못된 현실과 제도를 바꿀 힘은 없지만 동료 선생님이나, 이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규정에 의거하여 세특을 입력하는지 알아야 하는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정보를 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과세특’이 초래한 암묵적 교육과정, 위선조차 필요 없도록 도덕 허물어 라는 글은 

  • 실천적인 대안 없이 문제를 진단하고 공감을 얻는 데까지만 나아갔다. 지금 이 상황을 인정하고, 그러면 당장 어떻게 하라는 건지 제시한 것이 없다. 
  • 인용한 자기평가 질문 문항에 대해 오해를 불러올 수 있는 표현이 있고, 실제로 온라인에서도 그 글을 제대로 읽어보셨는지 의문이다.
  • 핵심 문제 중 하나인 교사의 게으름과 무책임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런 이유들로 나는 이 글이 불편하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선생님을 위해 지금까지 무엇을 해 오셨다고, 이렇게 하면 어떻겠냐고 쓰셨다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사진:  Unsplash 의 NIR HIMI

 

 

*

언급된 글 링크 (본문에도 제목에 링크되어 있습니다.)

 

[기록] 자기평가서를 활용한 교과세특 쓰기

'2021학년도 서울대학교 학종 안내서'의 내용을 참고하여, | 달라진 작성 지침과 입시 환경의 변화로 인해, 올해도 교과세특의 방법을 고민해 봅니다. 매년 기존의 글을 수정해 오다가 오랜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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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세특’이 초래한 암묵적 교육과정, 위선조차 필요 없도록 도덕 허물어 | 교육을바꾸는사람

김새로나: 얘들아, 기말고사가 끝났으니, 잠깐만이라도 여유를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 아이들: 아녜요 선생님. 요즘 과세특 쓰느라고 너무 바빠요. • 김새로나: 과세특을 ‘쓴다’고?

21erick.org

 

 

  1. 따옴표로 강조 표시한 것은 구거투스. [본문으로]
  2. 이 글의 조회수가 40000건이 넘는데, 전국의 많은 선생님과 학부모와 학생이 보긴 보았나 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