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들을 노래는 우리말만으로 가사를 쓰기로 잘 알려진

장기하와 얼굴들의 「달이 차오른다, 가자입니다.

 

 

달이 차오른다 가자
달이 차오른다 가자
달이 차오른다 가자
달이 차오른다 가자
.
달이 맨 처음 뜨기 시작할 때부터
준비했던 여행길을
매번 달이 차오를 때마다
포기했던 그 다짐을
.
말을 하면 아무도 못 알아들을지 몰라
지레 겁먹고 벙어리가 된 소년은
모두 잠든 새벽 네 시 반쯤 홀로 일어나
창밖에 떠 있는 달을 보았네
.
하루밖에 남질 않았어
달은 내일이면 다 차올라
이번이 마지막 기회야
그걸 놓치면 영영 못 가
.
오늘도 여태껏처럼
그냥 잠들어버려서 못 갈지도 몰라
하지만 그러기엔 소년의 눈에는
저기 뜬 저 달이 너무나 떨리더라
.
달은 내일이면 다 차올라
그걸 놓치면은 절대로 못 가
.
작사, 장기하

 

인디밴드에서 주로 드러머로 활동하던 장기하는 군대를 전역한 후 2008년에 직접 집에서 하나하나 제작한 솔로 싱글 음반(일명, 가내수공업 방식) 『싸구려 커피』를 발매합니다. 「달이 차오른다, 가자」는 그 앨범에 수록되지는 않았지만, 그의 공연에서 불리던 인기곡이었습니다. 미미시스터즈와 함께 하는 재미있는 율동도 인상적이고, 꿈은 많지만 현실은 초라한 청춘을 대변하는 듯한 그의 외모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었던 것이죠. 이 곡은 그후 발매된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의 1집에 실립니다.

당시의 영상을 볼게요.[각주:1]

 

장기하와 얼굴들 1집 앨범이 나오기도 전에, 장기하는 이미 '얼굴들'로 밴드를 구성하고 TV에서 '달이 차오른다, 가자'를 불렀다. @EBS

 

 

느껴보기

어떤 구절이 맘에 들어요?

맘에 드는 구절을 찾아서 왜 그 부분이 맘에 들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봐요.

 

여러분에게 '달'은 무엇인가요?

그 '달'을 향해서 가고 있나요? 망설인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나연: 나에게 달은 고등학생이 된 후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하루하루를 흘려보내는 시간 같아요.

 

다혜: ‘하지만 그러기엔 소년의 눈에는 저기 뜬 저 달이 너무나도 떨리더라’라는 구절이 마음에 들었어요. 평소에 소년은 달이 차오를 때마다 망설이다 결국 닿지 못했고, 그것을 몇 번이고 반복했지만 이번만큼은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는 듯한 의지가 느껴졌어요.

 

주아: "달이 맨 처음 뜨기 시작할 때부터 준비했던 여행길을, 매번 달이 차오를 때마다 포기했던 그 다짐을" 구절이 좋았어요. 뭔가에 도전하겠다는 마음이 있었지만 정작 기회가 왔을 때는 포기하곤 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요.

 

예서: 왜 하필이며 '4시 반쯤 홀로' 일어난다고 표현했을지를 생각해 봤어요. 4시 반이면 오늘과 내일의 경계이기도 하고, 잠들기에도 애매한 시간이죠. 미련에 빠진 소년의 상황을 표현하기에 딱 적당한 시간이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달은 계속 차고 질 텐데 왜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했을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어요. 달은 영원히 차고 질 것이기 때문에 언제 시작해도 된다는 마음이 소년에게 있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계속 그 상태로 머물러 있는 거죠. 가능성의 상태에.

 

그래요. 습관이 한 번 형성되면 벗어나기가 어렵대요. 이미 망설이는 버릇이 생겼기 때문에 계속해서 시도를 미루는,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상태에 있는 소년인 것 같아요. "내가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언제라도 시작만 하면 잘 해낼 수 있다"라고 생각하지만, 영원히 시작할 수 없을 거예요. 그래서 화자가 소년에게 이번에도 시도하지 않으면 영영 못하는 거야, 라고 얘기하는 거구요.

 

그런데 이 노래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달'일까요, '시간'일까요?

 

 

이미지 떠올리기

노래의 주인공은 어떤 표정을 지으며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이 노래에 어울리는 그림을 상상해 본다면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요?

 

 

넓혀보기(문학)

문학의 전통에서 '달'을 소재로 하는 경우는 참 많습니다. 고전시가에서는 대표적인 작품이 「정읍사」[각주:2]입니다.

 

님이시여 높이 높이 돋으시어
멀리멀리 비춰 주소서.

시장에 가 계신가요? 
진 곳을 디딜까 두렵습니다.

어느 것이나 다 내려놓으세요.
당신의 가는 곳이 저물까 두렵습니다.

 

이 노래에서의 '달'은 여인인 화자가 밤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는 남편의 안위를 걱정하며 밝게 비춰달라고 소망하는 기원의 대상입니다. 달에게 어떤 신비로운 기운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달이 차오른다, 가자」의 달과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읍사」의 달은 남편을 '집으로 돌아오게 하는 달'이고, '달이 차오른다, 가자'의 달은 '떠남의 욕구가 일어나게 하는 달'입니다.

 

한편, 이보다 이른 시기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신라의 향가 중에서 「찬기파랑가」[각주:3]가 있습니다. 

 

(구름을) 열어젖히니
나타난 달이
흰 구름 따라 떠가는 것 아니냐?
새파란 냇가에
기파랑의 모습이 있구나.
이로부터 냇가 조약돌에
기파랑이 지니시던
마음의 끝을 따르련다.
아아, 잣나무 가지 높아
서리를 모르실 화랑의 우두머리여.[각주:4]

 

이 시에서 '달'은 일반적으로, 찬양의 대상인 '기파랑'을 빗댄 자연물로 해석됩니다. 표면적으로는 달이 흰구름과 어우러진 풍경이 떠오르지만, 화자가 기파랑을 흠모하는 만큼 그를 빗댄 달도 따르고자 하는 마음을 가졌을 거라는 상상이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달이 차오른다, 가자」에서 '달이 맨처음 뜨기 시작할 때'의 소년이 지녔을 마음과 비슷하기도 하네요.

 

다음 작품도 흥미롭습니다.

 

이렇게 해서 관찰사 일행은 떠나게 되었다. 자란은 눈물을 삼키며 목이 메어 차마 쳐다보지 못하였으나, 은 조금도 아쉬워하거나 연연해하는 기색이 없었다. 이를 지켜본 감영 안의 관속과 비장들은 그의 남다른 의연함에 탄복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그와 자란이 함께 생활한 지 5, 6년이고 그동안 하루도 서로 떨어져 본 일이 없었기에, 세상에 두러도 없는 이별을 하면서 이렇게 쾌활하게 말을 하고 쉽게 떠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관찰사는 평양 감사직을 마치고 대사헌이 되어 조정으로 복귀하였고, 도 부모님을 따라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런데 점점 자신이 자란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감히 말이나 얼굴엔 드러낼 수 없었다.
이런 즈음 감시과를 본다는 방이 나붙었다. 아버지의 명대로 은 친구 두셋과 함께 산사로 들어가 과거를 준비하게 되었다. 산사에 있던 어느 날 밤, 친구들은 모두 잠자리에 들었을 때다. 도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홀로 일어나 뜰 앞을 서성였다. 때는 한겨울이고 눈 내린 밤 달빛이 눈부시게 환한 데다가 깊은 산속의 고요한 밤이라 온갖 소리마저 잦아들었다. 생은 달을 바라보며 자란을 그리워하다 구슬픈 마음이 절로 일었다. 얼굴 한번 봤으면 하는 마음을 누를 수 없어 정신을 잃고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그러나 밤은 아직 반이나 남아 있었다. 급기야 그는 서 있던 뜰에서 곧장 평양을 향해 길을 떠났다.

― 임방, 「눈을 쓸며 옥소선을 엿보다」[각주:5]

 

이 소설에서 주인공이 처한 상황으로 「달이 차오른다, 가자」를 보면, 달이 밝게 떠 있어야만 산속에서 길을 떠날 수 있으니 가장 밝은 '내일'이 아니면 떠날 수 없다는 노래 가사의 내용이 이해가 됩니다. 새벽 4시 반쯤 일어났다는 것도 밤이 반이나 남아 있다고 표현된 위 소설 속의 시간과 얼추 들어맞네요.  

 

 

넓혀보기(문법)

 

  • 달이  처음 뜨기 시작할 때부터

사전에 '맨'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헷갈릴 만한 뜻으로는 '맨¹'과 '맨-⁵'입니다. 앞의 것은 관형사이고, 뒤의 것은 접두사입니다. 비슷해 보이지만 의미가 조금 다른데요, 관형사 '맨'은 '더할 수 없는 정도나 경지'와 관련된 뜻으로서 '가장'과 유사하고[각주:6], 접두사 '맨-'은 '다른 것이 없는'이라는 뜻으로서 '순수한'과 유사합니다[각주:7]. 의미에 따라 다른 단어로 이해해야 하고, 띄어쓰기까지 달라지니 주의할 필요가 있어요.

 

* * *

  • 그걸 놓치면 영영
  • 그냥 잠들어버려서 갈지도 몰라
  • 그걸 놓치면은 절대로  가

'못'을 사용한 부정 표현입니다. 이때의 '못'은 부정 부사로서, 뒤의 용언과 띄어 써야 합니다. 보통 '안' 부정문과 비교되죠.

 

* * *

  •  차오른다 가자
  • 내일이면 다 차올라
  • 그걸 놓치면 절대로 못 가

조사 '은'은 많이들 주격 조사로 알고 있는데요, 보조사입니다. 주격 조사는 '주어 자격'을 주는 조사입니다. 붙으면 주어가 된다는 뜻입니다.  첫 번째 예문에서와 같이 '이'가 그렇습니다. 두 번째 예문을 보아도 '은'은 주어 자격을 주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세 번째 예문을 보세요. '놓치면'이라는 용언에 조사 '은'이 붙어서 주어 자격을 주었나요? 아니죠. 강조하는 효과를 주었습니다. 이렇듯, 조사 '은'은 대조, 문장의 화제, 강조의 의미를 더해 주는 '보조사'입니다.

 


 

끝으로, 2008년 당시에 이 노래를 유튜브에서 보고 썼던 짧은 글이 있어서 덧붙여 봅니다.

매너리즘에 빠져 살고 있던 청년 구거투스의 가슴을 뛰게 만든 곡이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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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묻혀서 포기해야만 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무언가 간절히 바라는 것이라면, 현재의 '나'를 이루고 있는 아주 중요한 요소라 해도 과감히 버릴 수 있게 가볍게, 가볍게 살기를 늘 꿈꾼다. 때로는 그래서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음을 안다.
.
그래서인지 하루하루 자고 일어나면 하나씩 하나씩 잃어버리는 것 같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애니메이션 '초속5센티미터'에서도 '하루하루 살아갈수록 슬픔은 쌓여만간다'고 하지 않았나.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며, 오늘 아니면 이제 영영 못 간다는 가사는 그래서 더욱 가슴 깊숙히 들어오는가 보다.
.
노래 속의 달은 사실, 하늘에 걸려있는 달이 아니다. 소년의 마음 속에 있는 꿈이 형상화된 것이리라.. 그것이 다 차버리면 또 다시 작아지고 또 차다가 작아지고.. 이것이야말로 비운의 일상이 아닐까.. 하늘에 걸린 달은 소년의 마음 속에 있는 달의 그림자일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소년은 그 그림자를 보고 본질을 떠올리는 것이고. 달이 차오른다는 것은 소년의 그리움과 욕망이 더이상 견딜 수 없을 만큼 커진다는 것. 잠들면 안 된다, 소년이여...
.
세상과 제도에 타협하며 어느새 하나의 부속이 되어버린 나에게, 일찍이 세일러문께서 말했던 명언을 상기시키며 다시 한 번 음악을 감상한다.
"사랑와 정의의 이름으로 너희들을 용서하지 않겠닷!"

(2008년, 서울의 허름한 자취방에서.)

 

 

  1. 이 영상의 유튜브에 달린 댓글들이 참 재미있습니다. ㅎㅎ 저로서는 매우 공감되는 이야기들이에요. [본문으로]
  2. 백제시대 때 지어진 작자 미상의 가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본문으로]
  3.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는 신라 시대의 10구체 향가이다. 《삼국유사》의 기이편 충담사 부분에 배경 설화와 함께 수록되어 있다. (위키백과) [본문으로]
  4. 양주동 해독 [본문으로]
  5. 2025학년도 수능 대비 수능특강에서 발췌. [본문으로]
  6. [예] 맨 처음, 맨 꼭대기, 맨 먼저, 맨 구석, 맨 가장자리. [본문으로]
  7. [예] 맨눈, 맨다리, 맨땅, 맨발, 맨주먹.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