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검정치마의 'Antifreeze'를 듣겠습니다.

 

우린 오래 전부터 어쩔 수 없는 거였어
우주 속을 홀로 떠돌며 많이 외로워하다가
어느 순간 태양과 달이 겹치게 될 때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거야
.
하늘에선 비만 내렸어 뼈 속까지 다 젖었어
얼마 있다 비가 그쳤어 대신 눈이 내리더니
영화서도 볼 수 없던 눈보라가 불 때
너는 내가 처음 봤던 눈동자야
.
낯익은 거리들이 거울처럼 반짝여도
니가 건네주는 커피 위에 살얼음이 떠도
.
우리 둘은 얼어붙지 않을 거야
바다 속의 모래까지 녹일 거야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 거야
얼어붙은 아스팔트 도시 위로
.
숨이 막힐 거 같이 차가웠던 공기 속에
너의 체온이 내게 스며들어 오고 있어
.
너와 나의 세대가 마지막이면 어떡해
또 다른 빙하기가 찾아오면 어떡해
.
긴 세월에 변하지 않을 그런 사랑은 없겠지만
그 사랑을 기다려줄 그런 사람을 찾는 거야
긴 세월에 변하지 않을 그런 사랑은 없겠지만
그 사랑을 기다려줄 그런 사람을 찾는 거야

작사, 조휴일

 

 

느껴보기

어떤 구절이 맘에 들어요?

맘에 드는 구절을 찾아서 왜 그 부분이 맘에 들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봐요.

독특하고 아름다운 표현으로 여겨지는 부분이 있다면 어디인가요?

 

예서: 가사의 내용과 특색있는 음색이 섞여서 현실감각을 지워 버려서 비현실적이고 지독한 낭만을 항유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 분위기와 가사를 따라가면 함께 정적이고 무의 공간인 우주에서 떠돌다 태양과 달이 일직선상에 맞춰집니다.
장면이 전환돼 뼈까지 적실 정도로 날카롭고 많은 비가 내리는 부분에서 다시 한없이 극적이게 되고요.
이후 몰아치는 눈보라는 시각적으로는 매우 역동적이지만 역설적이게도 하얀 풍경의 중심은 모든 소리가 고요하여 이런 두가지 감각이 섞여있는 장면이 생각납니다. 그러고 가사의 초반부 '태양과 달이 만나게 될 때면'을 읽을 때는 동그란 원형이 겹쳐지는 이미지가 떠올랐어요. 그런데 같은 멜로디의 이후 가사에서는 눈동자를 언급해요. 앞 구절 때문에 저는 이것 또한 두 명의 눈동자들이 겹쳐지는 시각 작품의 모습을 상상해 봤는데요, 아직은 시기상조인 것 같아요.
이렇게 노래가 극적이고 비유가 많아서 영화를 귀로 들은 기분이었습니다.

 

너무나 멋지고 아름다운 해석입니다!!

 

효이: 저는 "어느 순간 태양과 달이 겹치게 될 때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거야"라는 구절이 좋아요. 태양과 달이 겹치게 되는 게 과학적으로는 개기일식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전 세계가 다 이 주기가 다르다고 하더라고요. 아까 찾아봤는데 어떤 곳은 18개월 3개월 정도도 걸리는데 엄청 먼 곳은 300년도 더 걸린다고 하는데, 이렇게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시기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상대적으로) 다 다르다고 생각을 조금 해봤어요.

 

노래 속의 상황을 더욱 특별하게 받아들이게 해주는 정보네요. 내 기준으로만 생각했지, 전지구적인 현상으로 지역에 따라 다르게 보일 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거든요.[각주:1] 너무 좋아요. :)

 

 

이미지 떠올리기

노래의 주인공은 어떤 표정을 지으며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이 노래에 어울리는 그림을 상상해 본다면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요?

*생성형 AI인 뤼튼으로 그린 그림의 결과물을 보려면 아래 [ 🅥 더보기]를 눌러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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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롬포트 : " 일식이 있는 아주 춥고 눈 내리는 겨울날, 사랑하는 사람과 체온을 나누는 사람의 모습을 몽환적인 분위기의 일러스트로 그려줘."

 

 

넓혀보기(문학)

노래의 화자가 처한 상황, 즉 우주 속을 떠돌다 느낄 정도로 외롭고 영화서도 볼 수 없던 눈보라가 부는 상황은 이육사의 '절정'이라는 시를 떠올리게 합니다. 게다가 시의 마지막 ― 그 유명한 ― 구절 속의 '강철로 된 무지개'가 꼭 위 노래의 Antifreeze(부동액)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시어 같단 말이죠. ㅎ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이육사, '절정'

 

 

또 다른 시로는 최두석[각주:2]의 '성에꽃'을 함께 보고 싶어요. 바다 속의 모래까지 녹일 정도인 '너의 체온'이 이 시에서는 '막막한 한숨', '정열의 숨결', '입김' 등으로 형상화된 것 같거든요.

 

새벽 시내버스는
차창에 웬 찬란한 치장을 하고 달린다
엄동 혹한일수록 선연히 피는 성에꽃
어제 이 버스를 탔던
처녀 총각 아이 어른
미용사 외판원 파출부 실업자의
입김과 숨결이
간밤에 은밀히 만나 피워 낸
번뜩이는 기막힌 아름다움
나는 무슨 전람회에 온 듯
자리를 옮겨 다니며 보고
다시 꽃 이파리 하나, 섬세하고도
차가운 아름다움에 취한다
어느 누구의 막막한 한숨이던가
어떤 더운 가슴이 토해 낸 정열의 숨결이던가
일없이 정성스레 입김으로 손가락으로
성에꽃 한 잎 지우고
이마를 대고 본다
덜컹거리는 창에 어리는 푸석한 얼굴
오랫동안 함께 길을 걸었으나
지금은 면회마저 금지된 친구여.

최두석, '성에꽃'

 

*아래 [ 🅥 더보기]를 누르면 제가 아이들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 보실 수 있습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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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시내버스 타 본 적 있어요?
나는 언제 타 봤냐면 대학생 때 많이 타 봤거든요? 밤새 놀고 한 3시 반쯤 4시쯤 이때 이제 집에 갈 때 타는 거예요. 그때 벌써 버스가 다녀요.
근데 그때 버스를 타면 현타가 딱 와요. 무슨 현타가 오냐면 그 첫 차에 새벽 3시 반에 첫 차가 다니는데 사람들 가득 타고 있어요. 거의 만원버스예요. 그리고 어떤 사람들이 타고 있냐면 전부 열심히 치열하게 세상을 사는 그런 분들이 타고 있어요. ― 아마 파출부, 장사 나가는 사람들일 거라고 생각해요.

그때 그 경험을 몇 번 하면서 내가 참 부끄러운 삶을 살고 있다라고 반성을 많이 했는데요. 이 시를 읽을 때마다 그 장면이 딱 떠올라요. 막 인간 쓰레기 돼 가지고 밤새 술 먹고 새벽 3시 반에 첫 차 탔을 때 내가 본 시내버스 풍경이 떠오릅니다. 근데 이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새벽 이른 새벽에 일하러 갈까요?

안티프리즈는 연애 얘기인 것 같아요, 일단은. 그런데 그 연애 내가 이제 기대하는 사랑이라는 건 뭐냐면 말이죠, 

연애는 두 가지가 연애가 있습니다. 확장형 연애가 있고 폐쇄형 연애가 있어요. 근데 대부분의 어린 학생들은 폐쇄형 연애를 해요. 그러니까는 둘이 서로만 보고 다른 사람은 안 보는 거예요. 그게 폐쇄형 연애예요. 
단적인 예를 들면, 버스를 연인이 탔는데 자리가 하나밖에 없어요. 그러면 오빠가 다리가 튼튼하다며 남자가 서고, 보통은 여자친구를 앉힌단 말이에요. 근데 할머니가 그다음 정거장에 타요.

그때 보통의 젊은 친구들의 무슨 생각을 하냐면은 '내 여자친구가 다리가 아픈데 내 여자친구가 앉아 있어야지.' 하고는 이렇게 막 가려주고 막 이런단 말이에요. 그거는 폐쇄형 연애의 단적인 모습입니다. 확장형 연애는요. 내 여자친구가 지금 다리가 아프니까 그보다 더 아픈 사람이 아마 할머니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픔이 이 사람에게도 있다. 나에게 있는 아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겪는 아픔을 저 사람도 똑같이 겪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확장형 연애예요. 

나는 앞으로 여러분들한테 연애해라 연애해라 사랑을 해라 많이 얘기할 건데요. 그때의 연애와 사랑은 확장형 연애예요. 안티프리즈도 눈동자를 보고 뭐 이렇게 체온으로 서로를 녹이고 뭐 이렇게 하겠지만 이 두 사람이 서로만 계속 본다면 이 두 사람이 계속 살아갈 수 있겠어요? 두 사람의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서는 그들을 둘러싼 세계가 견고해야 해요. 무너지면 안 돼요. 그러므로 그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도 바라볼 수 있어야 해요. 둘이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이 같이 있어줘야 해요.

그러니까 아마도 이 노래에서 얘기하는 '안티프리즈'(혹은 체온)도 어쩌면 이 시의 '한숨 숨결 입김'을 다른 표현으로 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새벽 버스 타고 여기 가는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그렇게 가는 거 아니겠어요? 뭐 다른 게 있겠습니까? 그 마음이 잘 상상이 안 돼요. 나는 아침잠이 많은 사람이라 잘 상상해야 하는데, 요즘은 여름도 아니고 겨울에, 그것도 아주 추운 한겨울에 새벽같이 일어나 가지고 해도 안 떴는데 옷을 껴입고 사랑하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밖으로 나간다는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일지가 잘 미루어 짐작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만큼 되게 고귀하게 느껴져요. 그런데 그렇게 한다는 것이 얼마나 사랑하는 마음이 크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그게 노래 속 사랑과 비슷해 보여가지고 이 시를 한번 같이 넣어봤습니다.

 

 

 

넓혀보기(문법)

이 노래는 유독 '거야'가 많이 나옵니다.

우리 둘은 얼어붙지 않을 
바다 속의 모래까지 녹일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 

 

근데 이 '거야'는 구어적 표현으로, '것이야'라는 뜻이에요. '껏'이 아니라 '것'이듯이, '꺼야'가 아니라 '거야'입니다. 그런데 이걸 너무 많은 사람들이 틀려요. 처음에 함께 본 유튜브 영상에서도 '꺼야'로 나오죠? 많은 사람들이 쓴다고 해서 맞는 표기인 것은 아닙니다. 조심하세요. 구어적 표현이라고 해서 소리대로 쓴다고 생각한다면 그것도 오류이고요.

 

긴 세월에 변하지 않을 그런 사랑은 없겠지만
 사랑을 기다려줄 그런 사람을 찾는 거야

 

음악으로 들을 때는 그리 깊게 생각하지 않았던 가사가, 글로 읽으려 하니 복잡한 구조처럼 여겨집니다. 이 문장이 그러한데요, 지시어가 많아서 그렇습니다. 지시어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분명히 알지 못하면 문장 전체의 뜻을 알기가 어려워요.

위 문장들에서 굵게 표시한 세 단어는 모두 지시 관형사입니다. '그렇다'가 어원이긴 하지만 활용하지 않는, 즉 형태가 고정된 단어라는 얘기죠.

그런데요, 다행히도 위 문장의 '그런'과 '그'는 모두 바로 앞의 구절들을 가리켜요. 몇 구절을 건너뛰어 찾아야 하는 문장이 아니란 말이죠. 그러니, 그냥 빼고 읽는 것이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더 낫습니다.

 

긴 세월에 변하지 않을 사랑은 없겠지만 (A는 없겠지만)
긴 세월에 변하지 않을 사랑을 기다려줄 사람을 찾는 거야 (A를 기다려줄 사람을 찾는 거야)

 

이렇게 해 놓고 보니 참 묘한 문장입니다. 변하지 않을 사랑은 없지만, 그런 사랑을 기다리다니. 참 바보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화자는 그런 게 좋은가 봐요. 계산적이지 않고 낭만적이어서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본문에 소개되지 않은 전체 참여자들의 감상과, 주고받은 대화는 댓글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1. 해를 가리는 달의 그림자는 지표면에 간신히 닿기 때문에 일식 현상을 볼 수 있는 지역은 한정된다. 지역에 따라서, 해의 전부가 가려져 보이기도 하고, 해의 일부만 가려져 보이기도 한다. 태양이 전부 달에 가려지는 그림자 속에 관측자가 있으면 개기일식이, 일부만 가려지는 그림자 바깥쪽에 있으면 부분일식이 나타난다. 그 바깥쪽에서는 전혀 일식 현상을 볼 수 없게 된다. (태양우주환경 연구그룹 누리집) [본문으로]
  2. 최두석(1956년 11월 23일~)은 대한민국의 시인이자 대학 교수이다.
    1956년 전라남도 나주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의 국어국문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강릉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1991~1997)를 거쳐 현재 한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1997~)로 재직하면서, 계간 《실천문학》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2007년 제2회 「불교문예작품상」, 2010년 제3회 「오장환문학상」을 수상했다. (위키백과)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