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교사에게 시를 어떻게 가르칠까에 대한 고민은 숙명과도 같지요.
저는 이 문제에 대해서 기본적으로는, 가르치지 말자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시를 읽게 하고, 서로 이야기하게 할 수만 있다면 저절로 배움이 일어난... 다기보다는 적어도 시가 싫어지진 않을 겁니다.
누구나 좋아하는 것이 생기면 알고 싶어집니다. 내 얘기로 공감할 수 있는 여지가 생깁니다.
어리석은 저는 아직도 학생들에게 시를 던질 때 이런 상상과 기대를 하곤 합니다.
창비의 도움으로 오은 시인을 학교에 모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은 시인의 책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마음의 일>을 참 좋아합니다.
잘 공감되는 청소년 시집이기도 하지만요,
특히 오은 시인이 만화가 재수 작가님과 함께 펴낸 그림시집 버전은 시집 출판계의 혁명이라고 생각할 만큼 혁신적이고 의미있는 시도가 담긴 책이라고 평가합니다.
시 전체를 한두 장의 그림이나 사진으로 담아내는 방식의 시각화가 아니라 하나하나의 행에 담긴 고민이나 마음이 무채색의 만화로 표현되어 있어요.
시가 담고 있는 언어의 무게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만화 작가가, 시 감상이 서툰 독자들에게 시는 이렇게 느끼고 받아들이는 거야, 하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합니다.
아주아주 멋진 기획이에요.
그 그림시집을 일단 여러 권 사서 희망하는 학생들과 함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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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인 시집 함께읽기 행사 후, 드디어 오은 시인이 우리학교를 방문했습니다.
오은 시인께 미리 이런 부탁을 드렸습니다.
❝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강연을 일방적으로 듣기보다는 시인님과 소통하고 싶습니다.
소통을 위해 선택한 형식은 '낭독회'입니다. 우리가 시를 낭독할 테니, 시인님께서는 어떤 시를 듣고 싶은지 현장에서 정하기만 해 주세요.
그러면 그 시를 선택한 참여자가 시인님 바로 옆에서 낭독을 할 테고, 시인님은 그 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시면 됩니다. ❞ 라고요.
시인 앞에서 그 시인이 쓴 시를 낭독하기. 그리고 그 시에 대한 이야기를 바로 옆에서 듣기. ―
그래요, 내가 학생들에게 주고 싶었던 '새로운 경험'이 바로 이런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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