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교사에게 시를 어떻게 가르칠까에 대한 고민은 숙명과도 같지요.

저는 이 문제에 대해서 기본적으로는, 가르치지 말자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시를 읽게 하고, 서로 이야기하게 할 수만 있다면 저절로 배움이 일어난... 다기보다는 적어도 시가 싫어지진 않을 겁니다.

누구나 좋아하는 것이 생기면 알고 싶어집니다. 내 얘기로 공감할 수 있는 여지가 생깁니다.

어리석은 저는 아직도 학생들에게 시를 던질 때 이런 상상과 기대를 하곤 합니다.

 

창비의 도움으로 오은 시인을 학교에 모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은 시인의 책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마음의 일>을 참 좋아합니다.

잘 공감되는 청소년 시집이기도 하지만요,

특히 오은 시인이 만화가 재수 작가님과 함께 펴낸 그림시집 버전은 시집 출판계의 혁명이라고 생각할 만큼 혁신적이고 의미있는 시도가 담긴 책이라고 평가합니다. 

시 전체를 한두 장의 그림이나 사진으로 담아내는 방식의 시각화가 아니라 하나하나의 행에 담긴 고민이나 마음이 무채색의 만화로 표현되어 있어요.

시가 담고 있는 언어의 무게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만화 작가가, 시 감상이 서툰 독자들에게 시는 이렇게 느끼고 받아들이는 거야, 하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합니다.

아주아주 멋진 기획이에요.

그 그림시집을 일단 여러 권 사서 희망하는 학생들과 함께 읽었습니다.

 

너무 기대되고 설레는 모임을 안내하면서, 학교생활기록부 자율활동을 언급하는 일만큼은 그래도 좀 서글프네요.

 

무언가를 함께 읽을 때는 간식이 꼭 있어야 합니다. 과자를 쌓아놓고 카페에서 공수한 딸기라떼를 하나씩 나눠주면 책 읽기가 싫어질 리가 (거의) 없지요. 말을 하게 하든 무언가를 먹게 하든, 입을 사용하게 하는 것은 제가 기획하는 책읽기 모임에서는 매우 중요한 원칙입니다. (그래야 안 졸아요. ㅋ)

 

참여자('학생'이라고 하지 않고 이렇게 부르는 게 중요해요)들은 자연스럽게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며 시집을 읽습니다. 나는 이 풍경을 볼 때마다 정말 행복해요.

 

시집뿐만 아니라 책 읽기를 할 때는 목적을 분명히 하는 것이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이때에는 오은 시인을 만나서 각자가 시를 한 편씩 낭독하기 위해 무슨 시를 낭독하고 싶은지 정하는 것을 함께읽기의 목적으로 정했습니다. 서가마다 시의 제목을 챕터별로 나누어 붙이고 자신의 이름을 라벨용 포스트잇에 써서 붙이면 같은 시를 희망하는 참여자들끼리 모여서 최종적인 낭독 담당자를 정하기가 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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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인 시집 함께읽기 행사 후, 드디어 오은 시인이 우리학교를 방문했습니다.

오은 시인께 미리 이런 부탁을 드렸습니다.

❝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강연을 일방적으로 듣기보다는 시인님과 소통하고 싶습니다.

소통을 위해 선택한 형식은 '낭독회'입니다. 우리가 시를 낭독할 테니, 시인님께서는 어떤 시를 듣고 싶은지 현장에서 정하기만 해 주세요.

그러면 그 시를 선택한 참여자가 시인님 바로 옆에서 낭독을 할 테고, 시인님은 그 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시면 됩니다. ❞ 라고요.

 

시인 앞에서 그 시인이 쓴 시를 낭독하기. 그리고 그 시에 대한 이야기를 바로 옆에서 듣기. ― 

그래요, 내가 학생들에게 주고 싶었던 '새로운 경험'이 바로 이런 겁니다.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언급은 못 참지.

 

우리학교를 방문하는 작가님은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청중들에게 둘러싸이게 됩니다.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의자는 우리학교 도서관과 책읽기 행사가 추구하는 가치를 상징합니다. 저마다 다른 생각이 한자리에 모이기 때문에 아름답다는 것을요.

 

우리는 도서관 행사를 할 때마다 축하 공연을 꼭 합니다. 이 날도 학교 대표 밴드인 위켄드에서 보컬과 기타리스트가 공연을 해주었습니다. 시와 관련된 행사를 하기 전에 감성적인 노래를 몇 곡 듣고 나면 시를 감상하는 일이 더욱 즐거워집니다. 그것도 라이브라면 그 효과가 더 커지지요. 그 사이에 학생 진행자는 초청된 시인과 진행 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참여자들은 시인 옆에서 그 시인의 시를 낭독하고, 그 시에 대해 시인과 이야기를 주고받아요. 작가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비슷한 눈높이로 대화할 수 있을 때, 책이라는 것도 작가라는 것도 그들이 말하는 삶이라는 것도 다 우리와 비슷한 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도 시 말고도 시인에게 묻고 싶은 것도 있기에 포스트잇으로 따로 준비해 둡니다.

 

영원하고 싶은 순간. 만남. 수업도 이렇게만 되면 참 좋겠는데 말이죠..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