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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삽입했던 영상이 유튜브에서 삭제되었는데 비슷한 영상을 찾을 수 없어, 초속5센티미터 전체 예고편으로 새로 올립니다. (2024. 11.)

 

 

이번 토론회에서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초속 5센티미터>, 그 중에서도 제2화 <우주비행사>를 함께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십대의 사랑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위 영상은 <초속 5센티미터>의 세 편 전체에 대한 해설 영상인데요, 토론회에서 함께 본 애니메이션 자체를 공유할 수 없어서 위 영상으로 대신합니다. 

 

많이 알려진 문학 작품 속에서도 십 대의 사랑을 다룬 작품들이 많이 있습니다. 김유정의 <봄봄>과 <동백꽃>, 황순원의 <소나기>,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라는 첫 구절로 유명한, 강신재의 <젊은 느티나무>,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우리고 수 차례 다양한 형식과 갈래로 재창작된 <춘향전> 등...

 

그런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하고 있지는 않다.. 라는 느낌, 좀 듭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처한 상황과 비슷한 학생들이 등장하고, 상징적인 대사로 진리에 가까운 것을 말해주는 듯한 <우주비행사>라는 애니메이션을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일단, 참가 신청 때 받은 사전 질문에 대한 답변은 아래와 같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 기성세대와의 갈등이 우려된다. (금기 또는 금지된 것)

- 왜 십 대의 연애는 건전해야 하나? 건전하다는 것의 기준은 있나?

- 미성숙한 사랑. 서툰 사랑.

- 풋풋함. 아름다움. 예쁨.

- 성숙을 위한 발판

- 어른의 사랑과 무엇이 다를까?

이성에 대한 호기심과 호감으로 시작되어 서로의 다른 부분을 공감해주고 이해하는 방법을 배워나가는 과정을 겪고 헤어짐으로 이별의 아픔과 인간관계의 깊이를 배워나가는 모습일 것 같습니다 (원글 인용)

 

애니메이션을 보고는 이런 질문들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누었지요.

"카나에는 왜 토오노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 카나에의 취미동아리와 토오노의 취미동아리가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 카나에가 음료를 고르는 모습과, 토오노가 음료를 고르는 모습도 어떤 점에서 다르고 그 장면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 카나에와 토오노가 언덕 위에서 나누는 대화에서 카나에가 토오노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카나에는 왜 끝내 고백하지 못했을까?"

"카나에는 토오노에 대한 짝사랑 경험을 통해 성장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시간이 부족하여 미처 꺼내보지도 못했거나 소개에 그친 질문들도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속 인물들이 보이는 사랑이란 감정의 특징은? 그리고 그것이 너희들과 닮아 있는지?"

"카나에의 언니는 비중 있게 등장하는 유일한 어른. 이 어른의 특징은 무엇일까?"

"로켓 발사의 의미는? 그것이 사랑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애니메이션의 내용과 관련하여, 위 질문들의 답을 찾았거나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있나요? 

토론회에서 충분히 이야기 나누지 못했으므로, 여기에 대한 생각들도 댓글로 많이들 표현해 주길 부탁합니다.

근거가 되는 장면이나 대사와 함께 말이지요. 

다만, 댓글의 내용들이 우리가 함께 본 애니메이션의 의미 해석에 그치기보다, 우리 학생들과 그 또래들이 생각하는 '사랑'의 의미를 이해하고 '더 나은 사랑'을 할 수 있는 생각의 실마리를 제시하는 것이길 욕심내어 봅니다. 그 점에서 선생님은 <우주비행사> 속 인물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하는 모습을 긍정합니다. '완성'이 아닌 '과정'으로서 말이죠.

 

물론, 자유로운 감상도 좋아요.

 

참고로, 아래 내용과 함께 생각해 보아도 좋을 듯합니다.

자크 랑시에르와 함께 현재 프랑스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로 알려진 장뤼크 낭시(Jean-Luc Nancy)는 매우 흥미로운 사람입니다. (중략) 예수는 자신의 몸은 만지지 말라고 하면서, 자신이 부활했으며 하느님께 올라갈 것임을 사람들에게 알려 달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중략) 예수를 만지지 않으면서 예수에게 다가가는 길은 무엇일까요? 낭시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아무것도 잡고 있지 않다. 너는 누구도 잡거나 붙잡을 수 없다. 바로 그게 사랑하고 아는 것이다. 너에게서 빠져 달아나는 이를 사랑하라. 가 버리는 이를 사랑하라. 떠나고자 하는 이를 사랑하라."

(중략)

사랑을 줄 때조차 우리는 사랑을 받습니다. 바로 이것이 중요한 점입니다. 사랑을 하면서 우리는 상대에게 사랑을 줍니다. 더구나 우리는 내가 나와 맺는 관계, 그리고 그가 그 자신과 맺는 관계를 벗어나 어쩌면 상대로부터 받은 무언가를 줍니다. 

― 정여울, <공부할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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