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에 구미공공도서관의 제의로 구미/칠곡 권역의 4개 중고등학교에서 독서토론동아리 연수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미지의 아이들을 만난다는 설렘과 재미로 가득했던 즐거운 시간들이었는데요, 이 때 사용한 토론 모형은 김해시 청소년 인문학읽기대회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교내 토론대회나, 독서토론부에서 곧잘 변형하여 활용하곤 하였었습니다.
1. 책 소개 및 동영상 보기
― 이 때 저는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지정도서로 하였기에, 그의 삶을 다룬 'EBS 지식채널e - 마지막 비행' 편을 흥미 유발 요소로 보여주었습니다. 또는 <어린왕자> 전체 줄거리를 프레지 등으로 흥미롭게 만들어서 보여주는 방법도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어린왕자>를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 한 번 읽고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으니까요.
2. 낭독하기
― 토론 전, 책을 미리 읽어 오도록 안내해 둡니다. 그리고, 토론 시간에는 모두 모여서 각자 마음에 들었던 구절을 낭독합니다. 같은 구절을 고른 학생이 있는 경우, 몇몇이 역할을 나누어서 낭독해도 좋겠습니다. 낭독한 학생은 낭독한 후, 그 구절을 고른 이유를 말합니다. 같은 구절을 고른 학생들끼리는 서로 통했다고, 오늘의 천생연분이라고 하며 눈을 마주보고 웃어주라고 하면 아이들이 좋아라 합니다.
만약, 발표자가 선뜻 나타나지 않으면, 이미지 게임이나 눈치 게임, 혹은 '재미 요소로 모둠장 뽑기(googeo.kr/entry/groupleader)' 등의 방법으로 발표자를 결정할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말을 하고 웃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발표하면 사탕을 주겠다고 꼬셨습니다만, 별로 많이 손을 안 들었네요..
3. 쟁점 찾기
(1) 맘에 드는 구절 낭독하기가 끝나면 아이들을 4명씩 모둠으로 앉게 합니다. 그리고 그 모둠 안에서도 2인 1조로 짝과 함께 토론할 수 있도록 '짝팀'을 짜 줍니다. 각각의 짝팀은 아래 학습지를 활용하여 2개의 쟁점을 제시하고 서로 토론하며 모둠에 가서 토론했으면 더 좋을 하나의 쟁점을 선택합니다. 단, 반드시 각자 제안한 두 쟁점 중 하나만을 선택할 필요는 없습니다. 보완이 가능하며, 2명이 제안한 쟁점을 아우르는 더 큰 범주의 쟁점을 선정해도 무관합니다.
(2) 4인 1조로 (1)에서 정한 쟁점을 각각 제시하고 토론한 후, 더 좋은 쟁점을 선정합니다. 아래 학습지 양식을 활용하며, 모둠의 최우수 쟁점을 선택하는데, 그 방법으로는, 더 포괄적인 쟁점을 만들어도 되고, 전혀 새로운 쟁점을 선정해도 됩니다. 왜냐하면 조원들과 토론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될 수도 있고, 새로운 의문이 생겨 모둠원 전원에게 커다란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포스트잇 등을 활용하여 중요한 용어나 의문점 등을 기록하게 합니다.
(3) 앞선 단계에서 각 조가 선정한 쟁점을 모두 공개하고 각 조의 대표자(선정된 모둠의 최우수 쟁점의 제안자)가 나와서 쟁점을 칠판이나 화이트보드에 쓰며 간단히 설명합니다.
앞에 나와서 쟁점 제안의 의도를 설명하는 모습.
(4) 모든 조가 쟁점을 기록하면, 교사는 칠판에 쓰여진 쟁점들을 범주화 합니다. 다시 말해, 비슷한 것끼리는 묶어주고, 겹치는 것은 그 중 하나를 삭제합니다.
교사가 범주화하는 것은 비슷한 성격을 가진 후보(쟁점)들의 단일화를 통해, 표가 분산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며, 복잡해 보이는 쟁점들을 간단히 보이게 하기 위함입니다.
(5) 이제, 쉬는 시간을 줍니다. 단, 쉬는 시간에 할 일이 있다고 알려줍니다. 자유롭게 이야기면서 전체 토론에서 다루었으면 하는 쟁점에 투표하라고 안내한다. 보통 1인 3표를 주면 무난합니다. 투표는 투표란에 각자 할 수 있는 개수만큼의 동그라미를 치는 것입니다.
투표는 공개로 이루어집니다. 쟁점마다 달려 있는 말풍선에 동그라미를 그리는 것이 의사표현 방법입니다.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 화장실 가는 것보다 투표하는 것이 더 중요한 듯 행동하였습니다.
(6) 쟁점 투표 및 쉬는 시간이 끝나면 각 쟁점의 득표 수를 계산합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전체 토론에서 다룰 쟁점의 순서를 정합니다. 1위와 2위는 아마 전체 토론에서 다루어지겠지만, 3위부터는 시간이 부족하여 다루지 못한 가능성이 클 것입니다. 아래 그림을 통해 당시의 투표 결과를 보면, 1위는 '점등인이 자신에게 내려진 명령에 너무 충실하는 것이 옳은가?'였고, 2위는 '어린왕자가 별을 다니면서 어른들을 이상하다고 단정지는 것이 옳은가?'였습니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명령과 억압 속에서 살다보니, 1위로 선정된 쟁점이 많은 지지를 받은 듯합니다.
4. 쟁점 토론
(1) 정해진 순위대로 이야기식 토론을 합니다. 이때, 쟁점을 제안한 조의 대표가 토론 사회자가 되고, 지도교사는 도우미로서의 역할만 합니다. 이 때 다뤄지는 여러 번의 검증을 받은 것이라서 발표자들은 꽤나 자부심을 갖습니다. 참가자들은 쟁점에 대한 자신의 생각들을 자유롭게 발언하되, 상대방 말의 헛점을 찾기 위함이 아니라, 공감하기 위한 질문과 대화라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토론을 많이 해본 아이들일수록 앞선 발언의 논리적 헛점을 짚어내는 데에 익숙한 모습을 보입니다만, 교사는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이러한 흐름을 적절히 조정해 줘야 합니다.
"그래서, 앞 사람의 말에서 네가 공감한 내용은 무엇이야?"
(2) 하나의 쟁점에 대한 토론이 끝나면, 그 쟁점에서 파생될 수 있는 또다른 쟁점을 제안해 봅니다.(확장된 사고의 질문 던지기)
(3) 원칙적으로 시간 제한이나, 발언 횟수 제한은 두지 않되, 필요하다면 특정 학생의 발언을 제한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두 사람이 여러 번 발언을 독차지 하게 되는 경우 말이죠.
5. 도서 탐색(선택 사항)
- 책의 내용에서 벗어나, 사회 현상 등과 관련하여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을 2인 1조로 도서관에서 찾습니다.
- 찾은 책을 전체 앞에서 발표합니다. (내용, 관련성, 새로운 쟁점 제시 등 자신의 견해)
- 100자 글쓰기를 합니다. 100자 정도는 금방 쓰기 때문입니다. 수업 시간에 시간이 부족하다면, 이것만 과제로 내주어도 좋겠습니다.
찬반을 인위적으로 나누어 대결과 경쟁의 대화를 하기보다 '서로 잘 들어주는 관계'를 형성하고 지향한다는 점에서 '배움의 공동체' 정신과 맞닿아 있다고 봅니다. 찬성과 반대의 의견이 명확히 대립하는 토론의 언어가 '독백의 언어'에 가깝다면, '더듬거리면서, 다른 사람의 언어를 매개로 이어가는 이야기'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활동은 서로 잘 듣는 관계가 형성된 교실, 배움이 느린 학생이나 소수의 의견도 보장되는 교실을 만듭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교사는 한 명 한 명의 이야기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경청하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입니다. '듣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하브루타'와의 관련성
이 토론 모형의 출발은 '짝토론'에 있습니다. 짝토론 과정에서의 궁금증과 대화 내용을 바탕으로 모둠 토론이 이루어지고, 전체 토론이 이루어집니다. 다시 말해, 짝토론에서의 논의를 발전시켜나간다는 관점에서는 하브루타적 발상에 기초한 방식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 다음 글을 참고하였고 일부 내용도 인용하였습니다. - 이형빈(강원도교육연구원), "배움의 공동체, 수업 모델을 넘어 민주주의 공동체로", '함께 여는 국어교육' 2016 봄호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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