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눈이 많이 와서
02 산엣새가 벌로 나려 멕이고
03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04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 보다
06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 가재미로 가고
07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사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08 이것은 오는 것이다
09 이것은 어늬 양지귀 혹은 능달 2 쪽 외따른 산옆 은댕이 예데가리밭에서 3
10 하로밤 뽀오햔 흰 김 속에 접시귀 소기름 불이 뿌우현 부엌에 4
12 이것은 아득한 옛날 한가하고 즐겁든 세월로부터
13 실 같은 봄비 속을 타는 듯한 여름볕 속을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 속을 지나서
14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으젓한 마음을 자나서 텁텁한 꿈을 지나서 6
15 지붕에 마당에 우물둔덩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여늬 하로밤
16 아배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배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사발에 그득히 사리워 오는 것이다
17 이것은 그 곰의 잔등에 업혀서 길여 났다는 먼 녯적 큰마니가
18 또 그 집등색이에 서서 자채기를 하면 산 넘엣 마을까지 들렸다는
19 먼 녯적 큰아바지가 오는 것 같이 오는 것이다 7
20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21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심심한 것은 무엇인가
22 겨울밤 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 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 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8
23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 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긇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9이것은 무엇인가
24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25 이 그지없이 고담(枯淡)하고 소박(素朴)한 것은 무엇인가 10
냉면은 진리입니다.
― 『정본 백석 시집』
'자료 > 현대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현대문학사] 구인회 (2) | 2021.02.09 |
---|---|
[현대시] 산유화(김소월) (0) | 2019.05.08 |
[현대소설] 레디메이드 인생(채만식) (0) | 2016.07.24 |
[현대소설] 복덕방(이태준) (0) | 2016.07.22 |
[현대소설] 과도기(한설야) (0) | 2016.07.22 |
[현대소설] 모래톱 이야기(김정한) (0) | 2016.07.03 |
[현대소설] 겨울의 환(김채원) (0) | 2016.07.03 |
[현대소설] 한계령(양귀자) (0) | 2016.07.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