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방과후수업 [철학카페에서 시 읽기](link)는 동명의 도서를 함께 읽으며 이야기하는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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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사유.
오늘 함께 읽은 부분의 첫 번째 소제목은 "우리는 연애할 수 있을까"였습니다. 그래서 옆 자리 친구들과 마주 보면서 '이 친구가 연애할 수 있을까?'라고 상상해보라는 것으로 수다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대부분의 학생들은 친구들이 연애를 할 것이라는 것에 대해 확신을 하지 못하더군요. 연애나 사랑이 그리 거창한 것도 아닌데,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고서 서정주의 <다시 밝은 날에 ― 춘향의 말 2>의 부분을 낭송하여 감상을 나누었습니다.
서정주의 <다시 밝은 날에 ― 춘향의 말 2> 일부. 서정주는 대표적인 친일 문학가입니다. 그래서 그의 시를 낭송하는 것이 썩 내키지는 않았습니다.
첫사랑에 빠진 마음을 "수천만 마리 / 노고지리 우는 날의 아지랑이", "초록의 강물결 / 어우러져 날으는 애기 구름"으로 표현했으나, 이내 "미친 회오리바람", "벼랑의 폭포", "소나기 비" 등과 같이 아주 강렬하고 격정적인 변화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에요.
라고 제가 이야기하고 또다른 감상을 물었더니, 사랑하는 사람을 "'신령님'이 그의 모습으로 내게 온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 감동을 준다고 한 학생이 말하였습니다. 저는 이런 발견이 참 좋습니다.
그리고 연이어 제시된 전봉건의 <춘향연가>를 읽었습니다. 이 시에는 모진 고문을 당하고, 옥중에서 목에 칼을 차고서도 환상에 빠진 춘향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인용된 부분의 마지막처럼,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지요. 이런 광기와 열기야말로 사랑의 속성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전봉건의 <춘향연가> 일부.
그러면서 저자가 인용한 시 한 편을 더 낭송하였습니다. 문정희의 <한계령을 위한 연가>인데요,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 한계령쯤을 넘다가 /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고 도발적인 상상을 하는 시입니다. 저자는 책에서 다시, 이렇게 완전히 정신이 빠지는 것이 사랑이라고 하지요.
문정희의 <한계령을 위한 연가> 일부.
이후 저자는 연애도, 시도, 사랑도 '사건'이라고 하면서 프랑스의 철학자 알랭 바디우 이야기를 합니다.
바디우는 사랑을 정의하면서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언급하였다고 합니다. 그것은 '만남의 우연성'과 '법칙성의 파괴'인데요, 책의 순서대로 우리는 '만남의 우연성'을 이해할 수 있는 시를 낭송하였습니다.
최승자의 <청파동을 기억하는가>에는 연인과 헤어져서 "오래 찔리는" 고통을 겪고 있음에도 "한없이 오래 찔리면서 / 한없이 오래 죽고 싶다"는 화자가 등장합니다. 우리는 이 시를 통해 사랑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최승자의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일부.
비슷한 시가 한 편 더 인용되어 있었는데요, 기형도의 <빈 집>입니다. 시가 다소 어려웠으므로, 우리는 무슨 말을 하고 싶다는 것일까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기형도의 <빈 집> 전문.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마음이 문의 닫혔다는 것.
지금은 이별하고 없는 그 사람에 대해 눈물 흘리고 망설였던 지난 기억들을 '빈 집'이라는 가상의 공간에 봉인하는 것.
떠나버린 사람에 대한 미련, 하지만 결코 돌이킬 수 없다는 슬픈 상황인식.
사랑의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이런 시들을 통해 우리는, 바디우가 말하는 '만남의 우연성'이 위험과 상처 등을 무릅쓰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73쪽에 있는 중요해 보이는 저자의 메시지를 확인하였습니다.
그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책에는 단지 "사랑의 경험이 사랑에서 중요한 까닭은 그것이 사랑의 '전부'이기 때문입니다."라고만 했을 뿐이지만, 저는 이것을 "상처 또한 사랑의 중요한 일부다. 위험이나 상처를 외면하고서는 완전한 사랑을 했다고 할 수 없다."라는 의미로 이해했고, 이를 학생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즉, 바디우가 말한 '만남의 우연성'은 '위험마저 각오한 사랑'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문정희의 <다시 남자를 위하여>를 낭송하였습니다.
"여자들은 누구나 마음속 깊이 / 야성의 사나이를 만나고 싶어"한다는 내용의 시였습니다.
사랑이라면 위험마저 각오하는 화자의 용기가 핵심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문정희의 <다시 남자를 위하여> 일부.
이쯤 하니, 종이 쳐서 '법칙성의 파괴'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지 못했습니다.
책의 내용에 따르면 그것은 '만남의 우연성'에 사회적 의미를 부여한 개념이었습니다만, 여기서부터는 다음 시간에 이어서 이야기하기로 하였습니다.
- 시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하고 그것을 공유하는 활동은 늘, 남의 규정한 시의 지식을 전달하고 주입하는 것보다 훨씬 감동적이면서, 공감할 줄 아는 인간이라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참 좋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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