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업과 배움, 학교에서 희망을 찾는 경북 국어 선생님들의 모임 '씨앗'에서 활동하고 있다. 씨앗의 단톡방은 여러 고민거리로 종종 풍성한 대화가 오가는데 여러 선생님들의 다양한 생각과 경험들, 조언들을 읽는 재미가 크다.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경우도 많지만, 이 단톡방에서 질문 나누는 것의 묘미는 따뜻한 위로와 동지애이다. 이것이 참 좋다.
며칠 전, 한 선생님께서 고민과 함께 도움을 요청하는 메시지를 올리셨다.
Y선생님: 선생님들 잘 지내시나요? 도움을 요청합니다. 울 학교의 강제 야자와 공휴일 자습을 없애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조언을 구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야 학교를 설득할 수 있을까요? 혹시라도 좋은 글이나 책이나 좋은 말씀이나~ 다 좋습니다~ 조언을 구합니다~
이내 답장 성격의 글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선생님이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넘 예쁜 마음이 담긴메시지, 너무 조급해 하지 말고 하나하나씩 천천히 해나가시라는 따뜻한 격려의 메시지, 자신의 학교에서는 어떤 식으로 운영하니 참고하라 언제든 돕겠다는 연대감 돋는 메시지 등이었다. 나도 처음엔 학생들의 문제이니 그들에게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 학부모들의 생각에 달렸겠는데? 정도로만 생각하며 올라오는 메시지들을 흥미롭게 읽었다. 그런데 무슨 말을 할지 계속 생각하다 보니 최근의 시사적인 이슈와 함께, 내 상급자와 의사소통을 하면서 겪는 어려움 등이 떠오르면서 이 질문을 민주적 의사소통과 주체성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그리고 "Y선생님의 생각이 위험한 것일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했다. 아, 오해하지 마시라.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주 작은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외부에 작동하고 작용하는 실질적 위험이 아니라, 내재된 위험성을 말하는 것이다.
아래는, 그렇게 쓰여진 글이다. 카카오톡이라는 메신저의 특성상 이때 건넸던 글은 이보다는 조금 더 짧다. 메시지를 보낸 후에 Y쌤이 남긴 답글의 내용 중 내가 답할 수 있는 부분을 보충하고, 의미가 모호하거나 어색한 표현을 좀 더 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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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의 여러 의견을 읽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이것이 씨앗의 저력이지요. :)
저 역시 자습뿐만 아니라 학교에 있는 모든 비민주성을 없애고 싶은 사람으로서, 쌤이 고민하고 이루고자 하는 것에 적극 찬성하고 지지합니다. 다만 조금 다른 결로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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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의도가 늘 좋은 결과로 나타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조금 생뚱맞죠? 내가 하려는 것이 혹시 타인의 고민이나 선택을 대신하는 것, 대신 결정하는 것, 심지어 대신 싸워주는 것은 아닌지 잘 고민해 볼 필요가 있고, 그렇다면 조금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습은 학생들이 하는 것이므로, 핵심 주체는 학생이지요. 학생들의 문제를 학생들이 다룰 수 있도록 분위기와 문화를 조성하고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선생이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해요. 내가 속한 집단을 벗어나서 보편의 시선으로 자신이 놓여있는 맥락을 이해하는 시민의식에 대하여, 주체적인 자아를 발견하고 만들어가는 것에 대하여, 거창하지 않아도 조금씩 더 나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선한 영향력에 대하여 수업에서, 일상에서, 학교 행사에서, 독서 프로그램에서 계속 이야기해 주고 서로 말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면 아주아주아주 조금씩은, 희망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고 나서 언젠가 그들이 원할 때, 그때 '함께' 해 주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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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그때까지 지금의 절실함과 순수함을 잊지 않는 것이 어려울 것 같긴 해요.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변화의 조짐이 없어 답답할 수도 있고, 심지어 틀린 방향으로 가는 것이 너무나 뻔히 보여 안타까울 것도 같아요. 하지만 뭐 어쩌겠어요.. 그것 또한 그들이 감당할 몫입니다. 사실 저도 '그들의 몫이다'라는 걸 인정하는 게 가장 힘들긴 해요. 하지만 현재의 내가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할 수 있게 돼요. 사람은 경험적이고 감각에 의지하는 동물인데, 알고 계시듯이 그 경험, 감각이라는 걸 그리 신뢰할 수 없잖아요? 또한 맞다, 틀리다의 기준과 의미도 사람마다 달라서, 옳음과 정당함과 공정이란 것들조차도 공허하게 여겨질 때가 많아요. (특히 요즘에는요.) 아마 공동체의 구성원 만큼이나 개념이 다양할 거예요. 제가 좀 비관적이고 극단적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럴 듯한 단어를 가져다 붙일 뿐이지 저런 단어들을 구사하는 내용들은 그냥 다 포장된 욕망으로만 보여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에게도 잘못된 관행을 경험해 볼 권리가 있어요. 스스로 문제상황를 경험해 보아야, 소수에게 혹시 생길지도 모르는 그 자그마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나름의 대안을 모색할 힘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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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은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을 읽으면서 든 것이에요. 이 소설에는 비록 천국이라 하더라도 남이 만들어준 곳에서는 살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이 나와요. 아이들을 위해 뭔가를 끊임없이 해주는 것이 내 교사로서의 정체성이던 당시에, 이 소설은 아이들을 위해 선의를 베푸는 것도 당사자들에게는 그들에게 작동해온 악의적인 폭력과 별 다를 바가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구나 하는 엄청난 성찰을 하게 만든 책이에요. 최근에는 대통령께서 수능에 대해 하신 말씀도 비슷한 관점에서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 내용이 설령 내가 원하는 수능 개혁의 방향이고, 교육을 위하는 그분의 선의를 의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런 식의 의사 결정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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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현실을 견뎌내는 것에 대해 말해 보려고 해요. 저도 노력하고 있는 생각의 방식인데요, (잘하진 못해요^^) 모든 것에는 좋은 면과 나쁜 면이 있어요. 학부모들이 여전히 강제 자습을 원한다는 사실은 개인의 자율성과 선택에 대한 감각이 이토록 부족한가 싶어 우리를 절망스럽게 만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이 아직까지 학교를 믿는다는 방증이기도 해요. 그건 좋은 점이지요. 그래서인지 우리 지역은 서울경기보다 압도적으로 민원도 적어요. :) 학부모들에게, 곧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교사의 진심이 그래도 통할 여지가 있는 곳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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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가치를 공유하고 같은 지점을 바라보며 학교의 변화를 꿈꿀 수 있는 선생님들이 있어서 참 고마운 씨앗입니다. 고민을 함께 나누려 글 올려 주신 덕분에 저도 제 입장과 생각을 돌아보고 정리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이 또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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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마치 고고한 생각으로 안전하게 학생들을 대하는 것처럼 써놨지만,
위험한 건 나도 마찬가지다.
다만, 이렇게 글을 쓰면서 세상에 대해 자꾸만 커지는 편향된 생각과,
비민주적 의사소통으로의 이끌림을 경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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