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일인성영화제>
인성영화제는 단편영화가 주로 다루는 '소외', 즉 작지만 소중한 것들을 다룬 짧은 영화들을 함께 보고 이야기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필요한 수준의 인성이 길러지리라는 믿음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수준의 인성'이란 시대착오적이지 않은, 그러니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관계맺음의 방식'이에요. 다름을 받아들이고 그것들에 너그러운 태도를 갖는 것이에요.

 

 

세 번째 인성영화제에서 김선빈 감독을 섭외하기로 하고 그 분의 영화 두 편을 상영했습니다.

<고백할거야>와 <수능을 치려면>입니다.

 

<고백할거야>는 인디그라운드에서 청소년 추천 독립영화로 소개가 되어 있어서 제가 미리 볼 수 있었는데요,

13분밖에 안 되는 짧은 런닝타임이지만, 기존의 통념을 깨는 그러니까 요즘 한강 작가의 작품에서도 많이 논의되고 있는, 

그동안 무심했던 '폭력에 대한 감각'을 일깨우는 주제가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게 제시되어 있어서 좋았어요.

물론 주제를 향하고 있는 인물의 생각 변화와 그것을 암시하고 상징하는 듯한 행동들을 찾는 재미도 있었고요. 

 

<수능을 치려면>은 저와 함께 일하는 선생님이 인디그라운드 사이트에서 보고 골라주신 영화인데요, 상업 영화로 판을 키워도 될 만큼 기발한 발상과 스토리 전개라고 생각했어요. 좀비물인데, 진짜 기발합니다. 

더욱이 내일이 수능인데, '수능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윤리란 무엇인가?' 등 다양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 

 

두 작품을 보면, 김선빈 감독님,

참 유머러스하고 이야기를 잘 만드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그의 유머 코드가 참 좋아요.

 

 

*

영화제 당시에 학생들에게 안내한 내용

 

3회 인성영화제 때 학생들에게 안내한 내용

 

학생들이 제출한 질문들

포스트잇에 쓴 질문들을 폼보드에 붙였어요.

 

 

이렇게 해 놓으면 포스트잇 앱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어요.

 

 

*

감독님과의 첫만남

 

김선빈 감독님이 오신 날은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이었어요.

감독님이 탄 열차도 20분이나 연착이 되어서 포항역까지 모시러 간 선생님이 엄청 고생하셨고요.

그런데 우리는 물회를 먹으러 인근 식당에서 모였습니다. :)

비오는 말의 물회도 맛이 좋네요. 

 

물회 :D

 

 

감독님과 나눈 대화

 

🌼 우리 지역의 감독님이시고, 문화예술이시고, 날씨가 궂어서 오지 말까 하는 생각도 있으셨을 텐데,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 ㅎㅎㅎ 네.

🌼 예전에 영화 보면서 질문을 받아서 포스트잇으로 모아서 이렇게 받아놨어요.

― 네, 읽어보니 되게 재밌었어요.

(...)

🌼 우리 학생들이 이렇게 생각해요. 영화인이 되려면 영화과를 가야 한다.

― 제가 다른 루트를 통해서 영화계로 가는 방법을 이야기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국어국문학과를 나왔어요.

(...) 

― 저는 고등학교 때까지 구미에 있었어요. 구미는 독립영화관도 없었고, 영화감독이 주변에 있는 환경이 아니다 보니까, 영화감독이 될 수 있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환경이었어요.

― 꼭 한 가지 일만 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영화 촬영을 하지 않을 때에는 강의를 한다든가 시나리오를 쓴다든가 하는 때도 많아요. 그리고 지금 구미에는 청소년 영화 동아리가 있어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둘 수도 있어요.

 

🌼 그러면 (영화에 대해서 잘 모르셨던) 고등학교 때는 어떻게 학창시절을 보내신 거예요?

― (...)

 

도서관에서 희망학생들과 함께 감독님과의 만남을 가졌어요.

 

(...)

🌼 <고백할거야> 관련해서 감독님이 여러분들 질문을 다 검토하셨거든요? 직접 뽑으신 첫 번째 질문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였어요.

― 처음에는 고백을 받아주는 로맨스 이야기였는데, 그 후로 디벨롭하면서 고백을 거절하러 가는 이야기로 바뀌었어요.

🌼 왜 바뀌었나요?

― 저의 중학교 때 경험 때문이었던 같은데요... (중략) 그때의 기억이 있어서, 제가 만든 영화의 주인공은 어떻게든 자기만의 얘기를 하는 인물이었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 요즘에도 고백을 받으면 거절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아요.

― 맞아요. 미움 받을까봐.

🌼 근데 저는 그게 일종의 폭력..으로 작용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는 일방적인 메시지 전달이란 측면에서 다소 폭력적인 측면이 있다고요. 제가 맞는 얘기를 하는지 한 번 들어봐 주시겠어요? 우린 폭력에 저항하지 않고 수용하는 것, 주변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하죠. 저 역시도 영화의 첫 부분에서는 주인공이 고백을 받아줄거라고 생각했는지 그러지 않고 도망가는 데서부터 응원했던 것 같아요. 당연하게 여겨왔던 거대한 폭력에 아주 작게 맞서는 소녀의 이야기다, 그런데 아주 큰 힘을 가졌다, 뭐 이렇게 해석했어요. 어떠세요? 

― 좋은데요? (웃음) 흘낏 보는 인생의 한 장면의 메시지를 잘 포착해서 전달해 주는 것이 단편영화의 매력이라고 생각하는 데 이 영화가 그런 점이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봐주시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

🌼 영화의 마지막에서 주인공이 다른 사람들이 다 보는 데서 고백을 거절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 고백을 거절하는 것이긴 하지만 성의를 보인 거예요.

🌼 근데 그것도 되게 큰 용기가 필요한 부분인 것 같아요.

― 그쵸. 아이러니하죠. 그 장면을 통해서 주인공이 영화의 처음과 끝에서 달라졌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했던 지원이, 일련의 사건을 거쳐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게 되는 영화죠.

 

(...)

🌼 <수능을 치려면>을 보면서 저는 무슨 생각을 했냐면, 포항 지진 생각이 났어요. 그 지진 때도 수능 감독관이었는데 그럼에도 수능을 봐야 한다는 게 무슨 부조리극처럼 여겨졌거든요.

― 맞아요, 저도 그 생각했어요. <수능을 보려면>에도 이런 대사가 있어요. '좀비가 나타났다고 수능을 연기하자고 하면 다른 지역 애들이 가만히 있겠나?' 이거 쓸 때 포항 지진 생각하면서 썼어요. 선생님은 그 때 어떤 생각하셨어요? (...)

 

(...)

🌼 (학생 질문) 영화에서 기사님을 차로 치잖아요. 그 당시에 좀비였나요?

― 전 좀비였다고 생각하고 만들었는데, 죽이고 싶어서라기보다 운전이 미숙해서 일어난 사고이기도 하고, 어디까지가 인간이고 어디부터가 좀비일까, 좀비면 죽여도 되냐 안 되냐 이런 질문도 던지고 싶었어요.

 

(...)

🌼 좀비는 설정이고, 운전이 핵심인 것 같은데,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스스로 운전석에 앉아서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순발력? 이런 것이 감독님의 의도라고 생각했는데 맞나요?

― 아주 정확합니다. 제가 영화 만들 때 운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어요. 청소년들이 무면허로 운전을 한다는 게 현실에서는 불법이지만, 운전대를 잡고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간다는 상징성을 담고 싶었어요.

🌼 맞아요. 바로 이 설정이 되게 매력적이면서 적절한 설정이라고 생각했어요. 나는 내 운명의 운전석에 앉아 있는 건지, 자율주행 장치에 앉아 있을 뿐인 건지, 버스에 실려 있기만 한 건지 하는 생각을 하거든요. 공교롭게도 영화 속 주인공들은 내비게이션조차 없이 지도를 직접 찾아가면서 수동 기어 자동차를 조작해서 목적지에 도착하죠. 정말 엄청난 모험이고 도전이에요.

― 맞아요. 영화 만들 때, 길을 잃더라도 직접 운전하는  삶을 응원하고 싶어서 만든 거였어요.

 

대화를 끝내고 나서 감독님과 참여자들과 함께 한 기념 촬영

 

 

*

실제로 만난 김선빈 감독님은 상상력이 풍부하고 되게 긍정적인 분이셨어요.

아마 그 두 가지가 서로 관련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상상력과 긍정.

나도 더 많이 상상하되, 이왕이면 희망을 상상해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참여한 학생들에게도 좋은 경험이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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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보도 (경상매일신문)

 

경상매일신문 (2024. 10.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