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난설헌은 조선의 뛰어난 문인이었지만,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여성이었으니까요. 오히려 여성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이 부족하다며 불행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이 지닌 가치를 중국과 일본에서는 알아보고 널리 애송되었습니다. 오히려 나중에서야 조선에서 재평가되었지만요. 우리 안에 있는 뛰어난 가치를 우리 스스로가 못 알아보고 외면한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겠습니다. 관습과 고정관념 때문에 말입니다. 1
요즘 밴드 '이날치'의 성공에 힘입어 재조명되고 있는 그룹이 있습니다.
'씽씽'.
이미 해체해 너무 아쉬운 이 밴드를 소개하고 싶어요.
이날치의 베이시스트 장영규와, 드러머 이철희 2 씨가 여기서도 연주를 했습니다. 3
가운데서 충격적인 복장으로 민요를 부르는 소리꾼 이희문 씨가 이런 얘기를 했죠. 4
민요도 그것이 만들어질 당시에는 가장 힙한 음악이었을 거에요.
― 서울문화재단과의 인터뷰에서. (2020. 1. 13.)
민요는 고상한 음악이다, 한의 정서가 깃든 음악이다, 등등의 프레임. 이러한 생각들로 민요를 대해 왔던 것 같아요.
국악의 현대화에 많은 관심을 가져온 저조차도 민요나 판소리만큼은 힙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그동안 한 번도 의심한 적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깜짝 놀랐습니다. 창법이나 악기 구성, 편곡 등을 새롭게 하여 세련되고 현대적일 수는 있어도 '한국의 클래식'이라는 프레임을 벗어나지는 못했거든요.
씽씽의 시도들과 노래들, 그리고 그들의 복장을 보며, 생각의 프레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연습을 해 봅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 있는 것들을 다른 눈으로 보았을 때 행여 놓치고 있던 가치를 발견할 수는 있지 않을까, 하고 주변을 새롭게 보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덧,
우리 집에 있는 만 4살도 안 된 아이가 '범 내려온다'를 흥얼거립니다. '수궁가'의 한 대목을요.
판소리와 민요가 이렇게 대중성을 획득하는 날이 오다니, 참 감개가 무량합니다.
- 허난설헌의 작품은 1608년 동생 허균이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명나라 작가들에게 보인 뒤, 그 재주에 탄복한 명나라 관리들의 주선으로 비용을 지원받아 출간하여 조선에 들어오게 되었다. 또한 작품 일부를 동생 허균이 명나라 시인 주지번에게 주어 중국에서 시집 《난설헌집》이 간행되어 알려지면서 격찬을 받았다. 한편 1711년에는 일본에도 소개되어 분다이(文台屋次郎)가 그녀의 시를 간행, 한때 애송되기도 하였다. [본문으로]
- '곡성', '부산행', '전우치', '보건교사 안은영' 등의 음악감독. [본문으로]
- 심수봉, 김광석, 박상민, 이상은, 박정현, 유리상자, 여행스케치 등 걸출한 가수들의 라이브 세션으로 참여하였음. [본문으로]
- 2014 KBS 국악대상 민요상 수상자로 무형문화재 57호 경기민요 이수자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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