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집도 많은 집도 많은 남대문턱 움 속에서 두 손 오구려 혹 혹 입김 불며 이따금씩 쳐다보는 하늘이사 아마 하늘이기 혼자만 곱구나


거북네는 만주서 왔단다 두터운 얼음장과 거센 바람 속을 세월은 흘러 거북이는 만주서 나고 할배는 만주에 묻히고 세월이 무심찮아 을 본다고 쫓겨서 울면서 가던 길 돌아왔단다


띠팡*을 떠날 때 강을 건늘 때 조선으로 돌아가면 빼앗겼던 땅에서 농사지으며 가 갸 거 겨 배운다더니 조선으로 돌아와도 집도 고향도 없고


거북이는 배추꼬리를 씹으며 달디달구나 배추꼬리를 씹으며 꺼무테테한 아배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배추꼬리를 씹으며 거북이는 무엇을 생각하누[각주:1]


첫눈 이미 내리고 이윽고 새해가 온다는데 집도 많은 집도 많은 남대문턱 움 속에서 이따금씩 쳐다보는 하늘이사 아마 하늘이기 혼자만 곱구나 


― 이용악, 「하늘만 곱구나」[각주:2]


* 띠팡 : ‘장소’를 뜻하는 중국말. 여기서는 거북네가 유이민으로 생활하면서 경작하던 땅을 가리킴.


32. (가)에 대한 이해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1연에서는 고운 ‘하늘’과 ‘두 손을 오구려 혹혹 입김’을 부는 ‘움 속’의 상황이 대비[각주:3]를 이룬다.

② 2연에서 ‘두터운 얼음장과 거센 바람 속’의 세월은 거북네가 겪었을 시련을 짐작하게 한다.

③ 3연에서는 거북네가 가졌던 기대와 현실 사이의 괴리[각주:4]가 드러난다.[각주:5]

④ 4연에서는 거북이와 아배의 행동이 번갈아 제시되면서 거북이의 내적 갈등이 드러난다.

⑤ 5연에서 ‘첫눈’이 내리고 ‘새해가 온다는데’도 ‘움 속’에서 보는 ‘하늘’이 ‘혼자만 곱’다는 것은 상황의 비극성을 부각[각주:6]한다.


하늘만 곱구나... (Photo by Guillaume Galtier on Unsplash)


(나)

등 너머로 훔쳐 듣는 남의 집 대숲바람 소리 속에는 

밤사이 내려와 놀던 초록별들의 

퍼렇게 멍든 날개쭉지가 떨어져 있다.

어린날 뒤울안에서 

매 맞고 혼자 숨어 울던 눈물의 찌꺼기가 

비칠비칠 아직도 거기 

남아 빛나고 있다.


심청이네집 심청이 

빌어먹으러 나가고 

심봉사 혼자 앉아 

날무처럼 끄들끄들 졸고 있는 툇마루 끝에 

개다리소반 위 비인 상사발에 

마음만 부자로 쌓여주던 그 햇살이 

다시 눈 트고 있다, 다시 눈 트고 있다. 

장 승상네 참대밭의 우레 소리도 

다시 무너져서 내게로 달려오고 있다.


등 너머로 훔쳐 듣는 

남의 집 대숲바람 소리 속에는 

내 어린날 여름냇가에서 

손바닥 벌려 잡다 놓쳐버린 

벌거벗은 햇살의 그 반쪽이 

앞질러 달려와서 기다리며 

저 혼자 심심해 반짝이고 있다.

저 혼자 심심해 물구나무 서 보이고 있다.


― 나태주, 「등 너머로 훔쳐 듣는 대숲바람 소리」[각주:7]


33. <보기>를 바탕으로 (나)를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3점]

<보기> (나)의 화자는 특정한 소리로 인해 떠올리게 된 장면[각주:8]에서, 슬픔과 외로움을 느끼면서도 이를 견뎌내는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각주:9]을 발견하고 과거의 상처를 포용[각주:10]하게 된다. 2연을 기점으로 하여 1연과 3연에 나뉘어 제시된 장면에서는 기억 속 화자의 서로 다른 모습을 포착함으로써 이러한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

① 1연의 ‘대숲바람 소리’는 ‘초록별들의 / 퍼렇게 멍든 날개쭉지’와 연결되면서 화자에게 ‘매 맞고 혼자 숨어 울던’ 유년 시절의 서러운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② 2연에서는 ‘심청이네집’에 ‘마음만 부자로 쌓여주던 그 햇살’이 화자에게도 ‘다시 눈 트고 있’는 것으로 언급되면서 서러운 기억을 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

③ 2연에서는 ‘다시 눈 트고 있다’와 ‘다시 무너져서 내게로 달려오고 있다’가 대응되어 ‘햇살’과 ‘참대밭의 우레 소리’가 유사한 기능을 하고 있음을 읽어내게 한다.

④ 3연의 ‘여름냇가’는 2연의 ‘툇마루 끝’과 동일시되면서 화자가 어린 시절의 결핍으로 인해 꿈과 희망의 좌절을 경험했던 공간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⑤ 3연의 ‘대숲바람 소리’로 떠올리게 된 ‘햇살의 그 반쪽’은 ‘기다리며’ ‘반짝이고 있’는 것으로 제시되면서 화자가 기억 속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음을 드러내고 있다.


대숲. (Photo by Mirko Blicke on Unsplash)



31. (가)와 (나)의 공통점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구체적인 지명을 활용[각주:11]하여 시적 상황을 형상화한다. 

유사한 시구를 반복[각주:12]하여 시적 의미를 강조한다.

청자를 명시적으로 설정[각주:13]하여 어조를 형성한다.

반어적 표현[각주:14]을 통해 화자의 태도를 드러낸다.

시선의 이동에 따라 시상을 전개[각주:15]한다.




  1. 상황의 비극성을 잘 모르는 어린 거북이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또한 비극적인 상황과 대비를 이루어 비극성을 심화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요. [본문으로]
  2. 시 원문에 표시된 파랗고 빨간 음영은 긍정과 부정을 구분지어 표시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본문으로]
  3. 추운 '움 속' VS. 고운 '하늘' [본문으로]
  4. '가 갸 거 겨 배운다더니'(기대)와 '집도 고향도 없고'(현실)의 괴리. [본문으로]
  5. 원래 선택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 3연에서는 거북네가 고향에 돌아오면서 가졌던 기대와 돌아와서 직면한 현실 사이의 괴리가 드러난다. [본문으로]
  6. '첫눈', '새해', '고운 하늘'은 아름다운 대상. 하지만 '움 속'은 비참한 현실. 이 둘이 대비를 이루어 비극성이 부각됩니다. (대비의 효과 ➔ 강조) [본문으로]
  7. 시 원문에 표시된 파랗고 빨간 음영은 긍정과 부정을 구분지어 표시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본문으로]
  8. 1연의 "등 너머로 훔쳐 듣는 남의 집 대숲바람 소리 속에는(특정한 소리) ~ 날개쭉지가 떨어져 있다. 어린날 뒤울안에서(떠올린 장면) ~" [본문으로]
  9. 1연의 "매 맞고 혼자 숨어 울던" [본문으로]
  10. 포용의 계기는 2연의 "마음만 부자로 쌓여주던 그 햇살이 / 다시 눈 트고 있다, 다시 눈 트고 있다. / 장 승상네 참대밭의 우레 소리도 / 다시 무너져서 내게로 달려오고 있다."입니다. (2번 선택지 참고) 화자는 툇마루를 보다가 심봉사를 위로하던 그 햇살을 느꼈고, 그러자 대밭의 우레 소리도 자신에게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을 깨달은 거지요. 이윽고 3연에서 '미처 잡지 못한 햇살'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느끼게 되지요. 그런데 '미처 잡지 못한 햇살'이 뭘까요? '잡았던 햇살'의 반대겠지요? '잡았던 햇살'은 뭘까요? 자신이 지냈던 어린시절입니다. 그러므로 '잡지 못한 햇살'은 자신이 비록 그렇게 지내지는 못했지만 거기 있었던 어린시절이지요. 단지 여태까지 내가 발견하지 못했을 뿐. [본문으로]
  11. (가)에서 '만주', '남대문턱' 등이 활용되지요. [본문으로]
  12. (가)에서는 "아마 하늘이기 혼자만 곱구나"가 반복됩니다. (나)에서는 "등 너머로 훔쳐 듣는 남의 집 대숲바람 소리 속에는"과 '"다시 눈 트고 있다" 등이 반복되었습니다. [본문으로]
  13. 청자가 명시적으로 나타났다면, 누가 듣고 있는지를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적어도 '너'로는 나타나야 해요. 그런데 두 작품 모두 알 수 없습니다. [본문으로]
  14. 두 작품 모두 반어는 없습니다. 다만, (가)에서 비극적인 처지에 하늘만 곱다든지, 어린 거북이는 천진난만하게 배추꼬리를 달게 씹는다든지 하는 모습은 '역설적' 상황이긴 합니다. [본문으로]
  15. 조심해야 하는 선택지인데요, 시선의 이동이 부분적으로 나타난다고 해서, 혹은 시각적 이미지가 몇몇 있다고 해서 이것에 의해 '시상이 전개'되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화자의 상상이 아니라, 시선의 이동이 시 전개의 큰 틀이어야 합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