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고사가 끝났습니다.
그 기간 동안 학생들의 SNS에 심심찮게 보이던 문장들.
"왜 살지."
"뛰어내리자."
"자살각"
너무 속상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겠지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떨 때는 참 마음이 안 좋습니다. 시험 때문에 죽음을 언급한다는 것이, 그 정도로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 때문에 말이지요.
'죽음'을 이렇게 자주 언급하다 보면, '죽음'을 대할 때 우리가 취해야 하는 그 무게와 숙연함이라는 감정이 둔해질 수 있습니다. 의도하지 않았어도 무심결에 하는 말들에 의해 자신의 의식이 달라질 수도 있어요. 익숙해지고, 둔감해지면서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또 이런 생각도 들어요. ― '자신의 죽음뿐 아니라 타인의 죽음에 대해서도 이런 가벼운 생각을 하게 될까..' 하는.
'죽는다'라는 말을 쉽게 하지 마세요. '죽음'은 도피처가 아닙니다. 최선을 다해 산 사람들이 최종적으로 다다르는 안식처이고 도달점이어야 합니다.
루시드폴의 '아직, 있다'라는 노래는 아직도 세월호에 남아있을 9명의 미수습자 중 한 명이 화자인 것 같은 생각이 드는 노래입니다. 노래에서, 화자는 오히려 축쳐진 어깨를 하고 있을 친구들을 걱정하며, 자기 대신 따뜻한 집에 돌아가라고, 다시 봄이 올때까지 살아내 달라고 부탁합니다. 이 얼마나 따뜻한 위로인가요.
내가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냈다면, 산 자든 죽은 자든 누군가의 저런 바람과 소망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러니, 시험 따위에 죽겠다는 소리는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어요.
어찌할 수 없는 점수에 너무 스스로를 할퀴지 말고, 그저 내 몫뿐 아니라 그 누군가의 몫들까지 열심히 살아주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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