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門)을암만잡아다녀도안열리는것은안에생활(生活)이모자라는까닭이다.밤이사나운꾸지람으로나를졸른다.나는우리집내문패(門牌)앞에서여간성가신게아니다.나는밤속에들어서서제웅처럼자꾸만감(減)해간다.식구(食口)야봉(封)한창호(窓戶)어데라도한구석터놓아다고내가수입(收入)되어들어가야하지않나.지붕에서리가내리고뾰족한데는침(鍼)처럼월광(月光)이묻었다.우리집이앓나보다그러고누가힘에겨운도장을찍나보다.수명(壽命)을헐어서전당(典當)잡히나보다.나는그냥문(門)고리에쇠사슬늘어지듯매어달렸다.문(門)을열려고안열리는문(門)을열려고.

― 이상,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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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심  읽


문(門)을암만잡아다녀도안열리는것은안에생활(生活)이모자라는까닭이다.

➔ 생활이 모자라서 문을 암만 잡아다녀도 안 열린다.

그런데, '생활이 모자라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정상적인' 생활이 아닐까?


밤이사나운꾸지람으로나를졸른다.

➔ 밤이 나를 사납게 꾸짖으며 조른다.

그런데, 진짜로 밤이 '나'를 사납게 꾸짖었을까? 내가 나에게 꾸짖은 거겠지. 밤에. (자조적) 


나는우리집내문패(門牌)앞에서여간성가신게아니다.

➔ 나는 내 이름이 쓰여진 내 문패를 보며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이름이 쓰여져 있다는 것은 책임감이지. 그 책임감이 성가시거나 부담스럽다는 얘기. 아마 가장으로서 제 역할을 못해서겠지? 일단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피하고 보자, 이런 생각도 있었을 거야.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


나는밤속에들어서서제웅처럼자꾸만감(減)해간다.

➔ 나는 어둔 밤 안에서 주술인형(제웅)처럼 자꾸만 작아져만 간다.

가족을 제대로 책임지지 못하는 데서 오는 자조적인 생각. 가장, 또는 인간으로서 느껴야 할 자존감의 상실, 심리적 위축.


식구(食口)야봉(封)한창호(窓戶)어데라도한구석터놓아다고내가수입(收入)되어들어가야하지않나.

➔ 식구가 닫힌 창문(창호) 어디라도 한 구석 터 놓아야 내가 집안으로 들어갈 수 있지 않겠나.

은근히 집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심정을 내비치네. '집안으로 못 들어가겠다'와 '들어가고 싶다'라는 양가감정, 상호 모순적인 욕망이 드러나는구나.


지붕에서리가내리고뾰족한데는침(鍼)처럼월광(月光)이묻었다.

➔ 지붕에 서리가 내리고, 그 중 뾰족한 곳에는 달빛이 묻어있다.

'서리'를 통해 추운 이미지를, '뾰족한 곳에 묻은 달빛'을 통해 날카롭고 비정한 이미지를 제시하였네. 시적화자나 가족이 처한 환경이겠지. 그리고 이를, 시인이 살았던 시대와 관련지어 생각할 수도 있겠지.(일제강점기)


우리집이앓나보다그러고누가힘에겨운도장을찍나보다.

➔ 우리 집이 아픈가 보다(힘든가 보다). 그러고 누가 힘에 겨운 도장을 찍나 보다.

집이 경제적으로 몹시 힘든 상황임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야. 그런데, 도장을 찍고 있네? '집' 아니면 '땅'과 관련이 있겠지?


수명(壽命)을헐어서전당(典當)잡히나보다.

➔ 수명을 줄여가며, 집을 저당 잡히나 보다.

'저당'은 집을 보증으로 돈을 빌리는 것이야. 일단 돈이 궁하니까, 집을 담보로 해서라도 돈을 빌리는 것이라고 추측(~나 보다)하고 있지. 그런데 만약 돈을 못 갚으면 어떻게 될까? 그때 집도 빼앗기겠지? 이만저만 걱정스럽고 비참한 일이 아닐 수 없지. 그래서 수명이 줄어드는 느낌일 것이고, 화자가 이토록 괴로워하는 이유야.


나는그냥문(門)고리에쇠사슬늘어지듯매어달렸다.

➔ 나는 그냥 문 고리에 쇠사슬 늘어지듯 매달렸다.

'쇠사슬 늘어지듯'이라는 표현은 시적화자가 매우 절망적이고 무력한 상황이기 때문이겠지. 근데, 왜 매달렸을까? 마지막 구절을 보자.


문(門)을열려고안열리는문(門)을열려고.

➔ 문을 열려고. 안 열리는 문을 열려고.

아~ '문을 열려고' 매달린 것이었구나. 근데, 문을 왜 열려고 할까? 문을 열어야 가족과 함께 할 수 있잖아. 그러니, 이 마지막 구절에서는 가족 내부로 들어가고 싶어하는 화자의 욕구가 드러난다고 할 수 있지.

그런데, 이런 질문도 생각해 보자. 화자는 왜 들어가고 싶을까? 집이 저당잡히는 것을 알고도 들어가고 싶은 거잖아? 아마,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버릴 수 없어서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