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해례본 정인지 서문

세종 서문을 완벽하게 풀이하면서 한글 반포의 맥락과 한글 우수성과 가치를 쉽고도 명쾌하게 풀어낸

<훈민정음> 해례본 정인지 서문

훈민정음 해례본 © EBS클립뱅크


천지자연의 소리가 있으면 반드시 천지자연의 문자가 있다. 그러므로 옛 사람이 소리를 바탕으로 글자를 만들어서 만물의 뜻을 통하고, 천지인 삼재의 이치를 실었으니 후세 사람들이 능히 글자를 바꿀 수가 없었다. 그러나 사방의 풍토가 구별되므로 말소리의 기운 또한 다르다. 대개 중국 이외의 딴 나라 말은 그 말소리에 맞는 글자가 없다. 그래서 중국의 글자를 빌려 소통하도록 쓰고 있는데, 이것은 마치 모난 자루를 둥근 구멍에 끼우는 것과 같으니, 어찌 제대로 소통하는 데 막힘이 없겠는가?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은 각각의 처한 곳에 따라 편안하게 할 것이지, 억지로 같게 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동방의 예악과 문장이 중화와 같아 견줄만 하나 오직 우리말이 중국말과 같지 않다. 그래서 한문을 배우는 이는 그 뜻을 깨닫기가 어려움을 걱정하고, 범죄 사건을 다루는 관리는 자세한 사정을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을 근심했다.


옛날 신라의 설총이 이두를 처음 만들어서 관청과 민간에서 지금도 쓰고 있으나, 모두 한자를 빌려 쓰는 것이어서 매끄럽지도 못하고 막혀서 답답하다. 이두를 사용하는 것은 몹시 속되고 근거가 일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실제 언어사용에서는 그 만분의 일도 소통하지 못한다.


계해년 겨울(1443년 12월)에 우리 임금께서 정음 스물여덟 자를 창제하여, 간략하게 예와 뜻을 적은 ‘예의’를 들어 보여 주시며 그 이름을 ‘훈민정음’이라 하셨다. 이 글자는 옛 ‘전자’처럼 모양을 본떴고, 소리에 따라 만든 소리 짜임새는 음률의 일곱 가락에 들어맞는다. 천지인 삼재와 음양 이기의 어울림을 두루 갖추지 않은 것이 없다. 


스물여덟 자로써 전환이 무궁하여, 간단하면서도 요점을 잘 드러내고, 정밀한 뜻을 담으면서도 두루 통할 수 있다. 그러므로 슬기로운 사람은 하루아침을 마치기도 전에, 슬기롭지 못한 이라도 열흘 안에 배울 수 있다. 이 글자로써 한문 글을 해석하면 그 뜻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글자로써 소송 사건을 다루면, 그 속사정을 이해할 수 있다. 


글자의 운으로는 맑고 흐린 소리를 구별할 수 있고 음률로는 노랫가락이 다 담겨 있다. 글을 쓰는데 글자가 갖추어지지 않은 바가 없으며, 어디서든 뜻을 두루 통하지 못하는 바가 없다. 비록 바람소리, 학의 울음소리, 닭소리, 개 짖는 소리라도 모두 적을 수 있다.


드디어 임금께서 상세한 풀이를 더하여 모든 사람을 깨우치도록 명하시었다. 이에, 신이 집현전 응교 최항과 부교리 박팽년과 신숙주와 수찬 성삼문과 돈녕부 주부 강희안과 행 집현전 부수찬 이개와 이선로들로 더불어 삼가 여러 가지 풀이와 보기를 지어서, 그것을 간략하게 서술하였다. 대체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승이 없이도 스스로 깨우치게 하였다. 그 깊은 근원과 정밀한 뜻은 신묘하여 신들이 감히 밝혀 보일 수 없다. 


공손히 생각 하옵건대 우리 전하는 하늘이 내신 성인으로서 지으신 법도와 베푸신 업적이 모든 왕들을 뛰어 넘으셨다. 정음 창제는 앞선 사람이 이룩한 것에 의한 것이 아니요, 자연의 이치에 의한 것이다. 참으로 그 지극한 이치가 아주 많으며, 사람의 힘으로 사사로이 한 것이 아니다. 동방에 나라가 있은 지가 꽤 오래 되었지만, 무릇 만물의 뜻을 깨달아 모든 일을 온전하게 이루게 하는 큰 지혜는 오늘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중국 정통 11년(세종 28년, 1446년) 9월 상순 자헌대부 예조판서 집현전 대제학 지춘추관사 세자우빈객 정인지는 두 손 모아 머리 숙여 삼가 씁니다.


 김슬옹 해제(2015). <한글의 탄생과 역사: 훈민정음 해례본>. 교보문고. 156-1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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