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울어 주는 세상을 꿈꾼다

부제: 여럿이 함께 문제를 해결하면서 새로운 세대들이 배웠으면 하는 것.



영화 <올드보이> 중에서.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만 울게 될 것이다.”


― 영화, <올드보이>에 삽입된 ‘엘라 휠러 월콕스(Ella Wheeler Wilcox)’의 시, <고독(Solitude)>의 첫 구절.


좋지 않고 우울한 소식들이 많은 요즘입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건, 그리고 세월호.. 더욱이 요즘엔 세월호 특조위 덕분에 새로운 은폐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는 정국이지요. 사람의 생명이 가장 우선일 텐데, 해결된 건 없는데, 무엇이 잘못인지 제대로 따지지도 처벌도 하지 못했는데, 그만하라는 사람들도 있고, 전혀 무관심한 사람도 있습니다. 아픔을 겪으며 울고 있는 사람들 곁을 지키려는 사람은 극소수이고, 우리는 그저 무관심하거나 그들을 비난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위 시구가 떠올랐나 봅니다. 세상이 고되더라도 웃으라는 의도로 쓴 것이라는 해석이 주를 이루지만, 전 생각이 다릅니다. 고통을 겪으면서도 웃을 수밖에 없는 냉혹한 현실을 비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웃지 않는 '나'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함께 울어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메시지라고 말입니다.


기쁨은 인기가 많지요. 그래서 온갖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하지만, 슬픔과 고통은 사람과 사람 간의 거리를 멀게 합니다. 이 거리를 극복하는 것이 공감이라면, 부디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협동과 협력을 배워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는 능력을 갖추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그저 절망 속에서 실컷 우는 사람의 곁에 있어주는 모습입니다. 혹은 따뜻하고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봐 주는 것입니다. 굳이 어깨를 토닥거리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슬픔을 머금어야 마음이 자랄 수 있습니다. 타인이 느끼는 고통은 내가 애써 외면하려는 내 고통의 가능성이기도 합니다.


어제, 경북의 선생님들과 ‘교육과정-수업-평가’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자리에 다녀왔습니다. 타 시도에 대한 부러움, 현실적인 한계 등도 느꼈지만, 그래도, 가능성을 상상해 보자는 이형빈 정책팀장님의 말이 크게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래요, 척박한 현실보다는 언젠가 꽃이 활짝 피어날 날을 상상하며 더 힘을 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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