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드맵] 과도기(한설야)

반 고흐, <까마귀가 나는 밀밭>


'과도기'(1929)의 마인드맵 정리.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작품해설[각주:1]


1929년 4월 『조선지광』에 발표된 한설야의 단편소설. 


한국문학사에서 1920년대 신경향파문학을 한 단계 마무리하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작품은 주인공이 조선에서의 궁핍한 생활을 청산하고 만주로 이주한 후 그곳에서의 생활 역시 더욱 힘들다는 사실을 깨닫고 형제와 친지들이 사는 고향으로 다시 귀향한다는 간단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작품의 내용은 첫째 당시 최서해로 대표되는 신경향파소설이 주로 전망이 없는 폐쇄된 만주체험만을 다루고 있다면, 이 작품은 그 생활을 포기하고 귀향을 감행한다는 점, 둘째 귀향한 주인공이 어쩔 수 없이 노동자가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몇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는 이미 조선의 농촌사회가 붕괴되어 가는 한편 노동자계층이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이 소설사에서 의미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이유는 당대 소설사의 두 흐름을 이 작품이 통합했다는 데 있다. 


당대 신경향파 소설은 최서해적 경향과 박영희적 경향으로 분화되어 있었다. 전자가 주로 사실이나 체험에 근거를 둔 창작경향이라면 후자는 주로 지식인 작가의 관념의 표출을 창작의 주요 방법으로 삼고 있었다. 그러나 전자의 경우는 주인공들이 극도의 궁핍 속에 놓여 있어서 미래에의 가능성에 대한 사려 깊은 고려가 없는 상태였고, 후자의 경우는 관념에만 의존하여 근거없는 낙관주의만을 강조했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한계를 지니고 있었는데, 이 두 한계를 일정한 수준에서 모두 극복하는 단초를 마련했다는 데 이 작품의 의의가 있다. 


이 작품을 계기로 하여 작가 한설야는 노동자들이 밝은 미래를 위해 투쟁하는 과정을 자신의 소설 세계에 끌어들인 「씨름」(1929), 「황혼」(1936) 등을 발표하고, 마침내 「설봉산」을 통해 그 성취를 보게 된다.




줄거리[각주:2]


창선이는 먹고 살 길을 찾아 간도로 갔다가 4년만에 귀향했다. '되놈의 등쌀에 간도에서도 살 수 없게 되어' 발끝이 저절로 향한 곳이 그래도 고향이었다. 아내와 등에 업힌 자식을 대동하고 있으나 앞으로의 일이 여간 걱정이 아니었다. 


"무슨 낯으로 가족들과 동리사람을 대할까! 개똥밭 하루갈이 살 밑천이 없지" 


라는 한탄이 절로 나왔다.


그런데 고향이라고 찾아드니 옛 모습은 흔적조차 없어졌다. 집들은 깡그리 없어지고 보이는 거라곤 우중충한 벽돌집, 쇠집 굴뚝뿐이었다. 겨울 해는 짧다. 검은 바다에서 불어오는 짜디짠 바람이 살을 에는 눈기운을 머금고 휙휙 분다. 


고향은 공장지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행인이라야 검푸른 공장 복에다 진흙빛 감발을 친 청인인지 조선 사람인지 일인인지 모를 낯선 사람뿐이다. 옛날같이 상투 짜고 곰방대를 든 친구들은 한 사람도 볼 수가 없었다. 마침, 흰옷 입은 사람이 다가오고 있으나 흙냄새, 고기 냄새 나는 텁텁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를 붙잡고 물었더니 창리마을 사람들은 모두 고개 너머 구룡리로 옮겨갔다는 대답이다. 웬 판국인지, 무슨 조화인지 알 길이 없었다. 뒤재를 넘자니 철도길이 해변까지 뻗쳐 있다. 산천조차 그 모습이 변해버린 것이다.


어린 시절엔 가난한 대로 재미가 있고 평화로웠다. 창선이는 소몰이 동무들과 어울려 사또 놀음, 소경 놀음, 각시 놀이에 해 가는 줄 몰랐었다. 지금의 아내가 된 순남이는 나물 캐러 나왔는데 언제나 그녀가 좋았다. 어쩌다 개눈깔사탕이 생긴 날 순남에게만 나눠주곤 동무들의 험담을 듣기도 했으나, 누가 더 오래 녹이나 내기를 하며 깨가 쏟아졌더랬다.


창선의 집에는 고깃배가 한 척 있어서 겨울 제철 때면 마을 사람들은 너나없이 남자는 수레로, 여인네는 함지를 이고 고기받이를 나왔다. 이때 순남이가 함지를 내밀면 창선이는 더 크고 알 밴 고기를 잔뜩 담아주었었다. 이런 인연이 내외간으로 엮어지기에 이르렀다.


형님 집을 찾아들어 노모에게 큰절을 올렸다. 어머니는 간도살이가 어땠느냐고 묻는다. 창선이는 말이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거기서도 어서들 떠날 채비에 골몰 하다고 하며, 한 가족의 몰살 내력을 얘기한다. 어떤 영남 사람은 노모와 처자식을 집에 남겨두고 벌이를 나갔더랬다. 돌아온즉 늙은이는 방에서 얼어죽었고, 처자식은 간 데가 없더란다.


틀림없이 청인이 채갔거니 싶어 칼을 들고 찾아 나섰다. 그런데 눈 속에 한 아낙네가 강냉이 한 됫박을 마련한 채, 어린애 하나는 업고 또 하나는 주려 끼고 얼어붙어 있더라는 거였다. 물론 식솔이었다. 사내는 결국 발광해 죽었기에 일가족이 몰살하고 만 것이다.


형 내외가 밤중에 돌아왔다. 어머니 얘기로 대강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형의 입을 통해 마을이 통째 옮겨졌던 저간의 사정을 자세히 들을 수가 있었다. 일제에 의한 감언이설과 간교에 빠져 적은 돈으로 땅을 팔고 이리로 옮겨앉게 되었다는 거다. 


창리는 공장이 들어섰으나 제2의 인천항으로 만들겠다던 개발은 고기잡이에 손해만 끼치는 쪽으로 행해졌다. 


"아따, 이 포구를 못 봤나…… 축항인지 무언지 해준다는 게 꼴을 보게. 큰집 마당 만하게 좌우 쪽에 쉰 아무 발씩 방축을 쳐쌓았다네. 거게 무슨 배를 매며…… 벌써 일 년도 못 돼서 마흔 다섯 척 중에서 아홉 채가 바사졌네. 저 류관청네와 모래언덕 집과…….


어민들이 회사에 여러 차례 진정을 해보았으나 끄떡도 않는다. 세도 놀음에 달리 손을 써볼 수가 없어 이제는 체념하고 못 죽어지낸단다. 고기가 줄어들고 농사지을 땅도 없어 산송장 꼴들이었다. 옛날에는 산야에 격앙가가 넘쳤는데 지금은 황혼의 노동자 노래뿐이다.


'장진물이 넘어서 수력 전기되고/내호 바닥 기계 속은 질소비료가 되네/아-령 아-령 아라리가 났네/아리랑 고개로 넘겨 넘겨 주소//논밭간 좋은 건 기계간이 되고/계집애 잘난 건 요리간만 가네…….'


사람들은 화전이나 해먹을까 해서 보따리 꾸려 떠나갔다. 창선이는 요행히 공장 노동자로 뽑혔다. 상투 짜고 감발 치고 부삽 들고 콘크리트 반죽하는 생소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1929)


― 2011. 1. 26. 국포유에 작성한 글


#작가의실제체험을바탕으로한글이기에_더진실되게다가온다.


  1. 출처, 한국현대문학대사전(권영민) [본문으로]
  2. 출처, 한국현대문학대사전(권영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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