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2(금)에 읽었습니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두 번째 챕터는 '자기 복제자'입니다.


지구 상에 생물이 생기기 이전에 일반적인 물리화학적 과정에 의해 분자의 초보적인 진화가 일어났을 수 있다는 점이다. 디자인을 누가 했다거나 목적이 있다거나 방향성이 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할 필요는 없다. 에너지를 가진 한 무리의 원자가 안정한 패턴을 갖게 되면, 그 원자들은 그대로 머물러 있으려고 할 것이다. 최초의 자연 선택은 단순히 안정한 것을 선택하고 불안정한 것을 배제하는 것이었다. 이에 관해서는 전혀 신비로울 것이 없다. 그것은 정의대로 당연히 그렇게 된 것이다.

➔ 자연 선택과 진화의 중요한 전제를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되어 발췌해 봅니다.


――― 

나는 이 책에 오자가 없기를 바라지만 주의 깊게 찾아 보면 한두 개는 발견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아마도 문장의 의미를 왜곡할 만큼 심각한 오자는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그 오자가 '제1대'의 오류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인쇄술이 발명되기 이전에 복음서 등의 책이 필사로 출판되던 시대를 생각해 보자. 모든 사본은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 만들었더라도 틀림없이 몇 개의 오류를 갖고 있을 것이고, 그들 가운데 몇몇은 고의로 '개량'하려고 시도한 결과일 것이다. 그들이 모두 하나의 원본을 베꼈다면 내용이 심하게 곡해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본에서 사본을 만들고 그 사본에서 또 다른 사본을 몇 번씩 만들 경우 오류는 누적되어 심각한 상태가 된다.[각주:1] (...) 그리고 결국 진화를 가능케 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오류다. 

➔ 이 부분에서 명시적으로 이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진화의 과정에서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변이'를 설명하는 정말 명쾌한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 

복제의 오류가 진화에 필요한 선제 조건이라는 설과 자연 선택이 정확한 복제를 선호할 것이라는 설은 과연 양립 가능한가? 우리 자신이 진화의 산물이기 때문에 우리는 진화를 막연히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실제로 진화를 '바라는' 것은 없다는 것이 그 질문에 대한 답이다.[각주:2] 진화란 자기 복제자가 아무리 막으려고 갖은 노력을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일이다. 

➔ 이 부분을 읽으면서 무릎을 탁 쳤습니다. 과학에도 역설적인 면이 있다는 것을 새삼 발견하였네요. 


――― 

오늘날 자기 복제자는 덜거덕거리는 거대한 로봇 속에서 바깥세상과 차단된 채 안전하게 집단으로 떼 지어 살면서, 복잡한 간접 경로로 바깥세상과 의사소통하고 원격 조정기로 바깥세상을 조종한다. 그들은 당신 안에도 내 안에도 있다. 그들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창조했다.[각주:3] (...) 이제 그들은 유전자라는 이름으로 계속 나아갈 것이며, 우리는 그들의 생존 기계다.

➔ 이기적 유전자의 핵심 개념을 표현한 부분인 것 같아 발췌해 봅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생존 기술의 명수'인 유전자라는 자기 복제자가 존재한다는 증거라는 표현이 참 와닿습니다. 



  1. 굵은 글씨는 인용자 주. [본문으로]
  2. 굵은 글씨는 인용자 주. [본문으로]
  3. 이 단어에 대해서는 책 뒤에 '보주'가 달려있는데, 이 내용을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말을 '조종한다'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설명이 나옵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