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일 - [동영상 압축 기술](link)

댓글에 달았던 질문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얻고자 나왔습니다. 3문단 마지막 내용을 [제거 가능한(중복인)성분 = 우유의 수분] [데이터의 양 = 전지분유의 부피] [동영상의 화질 = 원래 우유의 맛] 이라고 이해를 했습니다. 그러면 [중복인 성분 많이 제거 -> 데이터의 양↓ -> 동영상 화질↓]이 되고, 이걸 우유에 적용하면 [우유의 수분 많이 제거 -> 전지분유의 부피↓ -> 우유의 맛↓]이 되어야 하는데 지문에서는 우유의 맛이 거의 보존된다고 했습니다. 제가 지문을 잘못 이해한 것인지, 잘못 이해한 것이라면 제가 정리한 것을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혜원: 화소 간의 중복된 부분이 불필요하니까 없앤다는 의미. 우유의 수분을 없애는 것도 불필요한 것을 없애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우유의 맛이 보존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나영: 화면이 단순할수록 제거 가능한 성분들이 많아져요. 화질의 차이가 별로 없이 데이터의 양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거예요.

 

가린: 근데, 전지분유의 부피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수분을 없애서 전지분유가 되어 우유의 부피가 줄어드는 거예요.

 

구거투스: 영일이가 글을 오독한 것인데요, 오독의 원인은 3문단 마지막 문장의 '이러한'이라는 지시어 때문입니다. 영일이는 이것이 바로 앞 문장을 의미한다고 보았던 것이구요. 보통은 바로 앞 문장을 의미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지요. 이 경우에는 3문단에 언급한 동영상 압축 과정 전체를 지시한 것으로 보아야 해요. 영일이는 이것을 이 지문에서 배운 중요한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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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 [소수 언어 보존의 필요성](link)

다양성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러한가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사람이란 존재는 원래 통일되지 않아요. 소멸될 수 없는 다양성을 지니고 있어요. 그냥 있어도 다양해요. 소수의 주류 언어가 살아남으면 다양성을 해치는 것이 될까요? 언어뿐만이 아닌, 다양한 요소가 다양성에 기여하기 때문에 다양성은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도 한국어를 사용하지만, 방언이라는 다양성이 그 안에 존재하는 것도 한 예라고 생각해요. 또, 동물 보호를 해야 하는 이유도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라고 하는데, 자연이라는 게 원래 다양성 아닌가요? 예를 들어, 코뿔소의 코를 너무 많이 잘라서 코뿔소가 멸종될 위기에 처했다는 의견도 있었는데, 오히려 코가 없는 코뿔소로 진화했다고 합니다.

 

가린: 동물보호는 집어치우고, 다른 텍스트를 보면, 언어가 세상을 바라보는 틀이라고 이야기하는 글이 있어요. 우리가 같은 곳에 있다고 같은 곳을 보지는 않잖아요? 예를 들어 농사를 짓는 사람은 농사 관련 언어가 많고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어업 관련 언어가 많지요. 어업 관련 언어가 사라지면 어업 관련한 정보들이 사라지는 거예요. 그것을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이 사라진다는 거예요.

 

나영: 언어가 통일된다고 해도 우리는 계속 쌀을 먹을 거고, 쌀에 대한 다양한 언어는 여전히 존재할 거예요. 우리는 원래 다양한 다양하고, 인류가 다양한 이상, 소수 언어 상실에 대한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혜원: 훈민정음이 없었을 때 기록되지 않고 사라진 것들이 많아요. 기록되지 않으면 사라질 위험이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라도 언어 보존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다인: 저도 비슷한 의견인데요, 언어라는 게 , 우리나라의 경우 문학 작품에 담긴 정서가 이별의 정한 등인 경우가 많잖아요? 만약 우리의 언어가 아니라 다른 언어로 우리 문학을 배운다면, 우리가 그것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감동을 지금처럼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가린: 소리는 존재하지만 우리는 못 듣는 소리가 있어요. 듣기 위해서는 언어가 존재해야 한다고 봐요.

 

두원: 소수 민족 언어로 이루어진 작품들이 있는데, 소수 언어가 사라진다면 이 작품들이 지닌 고유의 정서와 의미가 사라지고 우리가 해독할 수도 없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발표자가 예로 든 코뿔소는 코가 없거나 작은 애들만 살아남아서 걔네들의 유전형질만 살아남은 것이니까 예시로는 적절한 것이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다인: 저도 두원이 말대로, 원래 열등한 조건의 코뿔소들만이 살아남아 그것들만 남은 사례이기 때문에 다양성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나영: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코뿔소가 멸종 위기라는 사람들의 말이 결과적으로 과장되었다는 것이에요.

 

다인: 우리가 우세하다고 하는 언어들은 그 나라의 경제력 등이 우세해서 그렇게 된 것인데, 언어 자체만 놓고 보았을 때는 효율적이거나 우월한 언어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만약 소수 언어가 사라지고 일부의 언어만 살아남는다면 우월한 언어가 남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을 것이므로 소수 언어가 사라진다면 이 또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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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린 - [얼굴 없는 자화상 속에 담긴 화가의 심리](link)

왼쪽(그림 가): '파이프가 있는 고흐의 의자'(고흐 作). 오른쪽(그림 나): '고갱의 의자'(고흐 作)

 

(이미지를 가리키며) 이게 자화상이에요! '나'를 담은 그림이라서 자화상인 거예요. 내 얼굴이 아니라, 내가 바라보는 세상, 내가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 누구로부터 영향을 받았는지를 표현한 그림이에요. 그래서 생각을 해 봤죠. 그런 게 어쩌면 사진보다도,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진, 내가 의미있게 보는 물건이 담긴 사진이 남아서 대대손손 전해진다면 이런 것이 더 나를 담은 자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여행을 다니면서도 남들 다 찍는 사진을 찍는 것은 아쉬워요. 그래서 저는 여행지에서 술래잡기 등을 하면서 내가 특별히 공간을 활용해서 나를 남기는 방법으로 기록을 해요.

 

나영: 지금 가린이의 자화상을 그린다면 뭘 담아낼 것 같아요?

 

가린: 캐릭터가 들어갈 것 같은데요, 영인이가 그린 캐릭터가 있어요.

 

혜원: 흰 도와지에 신발 2개만 있는 것. (웃음)

 

가린: (매우 싫어하며) 근데 그것 자살한 것 같지 않아요?

 

우형: 여행 가서 사진 찍고 하는 것이 다 똑같다는 것 듣고 생각난 것인데요,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말, 저도 별로라고 생각하는데, 그 순간 사진을 찍는다고 해서 의미있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찍고 회상할 수 있는 사진이 가치있는 것 같아요.

 

가린: 예전에 어떤 장면을 본 적이 있는데요, 자기 자식의 학예회에 가서 모든 부모들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 거예요. 이제는 아이들이 부모님이 아니라 스마트폰을 향해 공연하는 것 같았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진찍는 것이 좀 지나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영: 저도 비슷하게 하나 떠오른 게 있는데, 인류 종말에 대한 사진이었는데, 소행성이 떨어지는데도 사람들이 다 아이폰으로 사진 찍는 거였어요. 그리고 저는 저한테 보이는 것들을 찍어요. 저의 모습을 잘 찍지 않지요. 동양과 서양의 차이이기도 한데, 동양은 남이 자신을 보는 것을 궁금해 하고, 서양은 자신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중요하게 생각한대요. 이런 제 방식의 단점은 내가 대체 이걸 왜 찍었나 하는 기억이 안 떠오르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에요. 이걸 왜 찍었지? 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 돌멩이를 찍은 것도 왜 그랬나 하고 궁금해 한 적이 있어요. 남이 날 어떻게 볼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인데, 내가 좋아하는 것을 통해서 이를 전해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두원: 이 발표를 듣고, 저는 이과이지만 생윤을 배우면서 "뭐 이런 당연한 말을 어렵게 하는 거야?"하며 불평을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윤리 시간에 배웠는데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살아있는 동안에는 죽음을 경험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와 같은 말이 그런 거예요. 장난치는 것인지 알았는데 그 의미를 알고 깨달은 적이 있어요. 마찬가지로, 자화상도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발표자가 그 의미를 잘 말해주어서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