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과정중심시읽기 (3)

자료/현대문학

[현대시][과시기] 가지가 담을 넘을 때(정끝별)

이를테면 수양의 늘어진 가지가 담을 넘을 때그건 수양 가지만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얼굴 한 번 못 마주친 애먼 뿌리와잠시 살 붙였다 적막히 손을 터는 꽃과 잎이혼연일체 믿어 주지 않았다면가지 혼자서는 한없이 떨기만 했을 것이다​한 닷새 내리고 내리던 고집 센 비가 아니었으면밤새 정분만 쌓던 도리 없는 폭설이 아니었으면담을 넘는다는 게가지에게는 그리 신명 나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무엇보다 가지의 마음을 머뭇 세우고담 밖을 가둬 두는저 금단의 담이 아니었으면담의 몸을 가로지르고 담의 정수리를 타 넘어담을 열 수 있다는 걸수양의 늘어진 가지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그러니까 목련 가지라든가 감나무 가지라든가줄장미 줄기라든가 담쟁이 줄기라든가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가지에게 담은무명에 획을 긋는도박이자 도반이었..

자료/현대문학

[현대시][과시기] 맨발(문태준)

어물전 개조개 한 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죽은 부처가 슬피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펄과 물 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 갔다.저 속도로 시간도 흘러왔을 것이다.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늘 맨발이었을 것이다.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아-,하고 집이 울 때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같은 집으로 돌아오면아-,하고 울던..

자료/현대문학

[현대시][과시기] 가족(이상)

문(門)을암만잡아다녀도안열리는것은안에생활(生活)이모자라는까닭이다.밤이사나운꾸지람으로나를졸른다.나는우리집내문패(門牌)앞에서여간성가신게아니다.나는밤속에들어서서제웅처럼자꾸만감(減)해간다.식구(食口)야봉(封)한창호(窓戶)어데라도한구석터놓아다고내가수입(收入)되어들어가야하지않나.지붕에서리가내리고뾰족한데는침(鍼)처럼월광(月光)이묻었다.우리집이앓나보다그러고누가힘에겨운도장을찍나보다.수명(壽命)을헐어서전당(典當)잡히나보다.나는그냥문(門)고리에쇠사슬늘어지듯매어달렸다.문(門)을열려고안열리는문(門)을열려고.― 이상, ――과정중심 시 읽기 문(門)을암만잡아다녀도안열리는것은안에생활(生活)이모자라는까닭이다.➔ 생활이 모자라서 문을 암만 잡아다녀도 안 열린다.그런데, '생활이 모자라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정상적인' 생활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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