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 나무 밑에는 당근을 심으면 안 된다는 말이 있어요. 호두 나무 밑에서 독성물질이 나오기 때문이지요. 뿌리 식물은 그래요. 이 지문은 이런 내용이 생각이 나서 읽게 되었는데, <이기적 유전자>를 최근에 읽고 있는데요, 식물에도 이런 생존 전략이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알레로파시가 동물의 이기적 전략과 다른 점은 같은 종에게도 적용한다는 것이에요.
우리 집에 땅이 많고 연못이 있어요. (청중: 금수저다, 금수저.) 처음에는 부레옥잠이나 개구리밥을 키웠어요. 부레옥잠은 줄기가 물 밑으로 끝까지 들어가지 않고 기포층이 있는 줄기 부분이 물고기 부레 역할을 해서 물 위에 떠 있어요. 근데 나중에 연을 키웠어요. 부레옥잠이 90%, 연은 한 두 뿌리로 시작했는데, 부레옥잠이 점점 (경쟁에서) 지더라구요. 지나니까 연이 다 먹고 부레옥잠이 다 죽었어요. 심지어는 부레옥잠이 연처럼 자라기도 하더라고요. 원래 뿌리를 안 내리는 식물인데 뿌리를 내리고, 줄기도 물밑을 향해 일자로 뻗더라구요. 그치만 애초에 부레옥잠은 뿌리가 강할 수 없는 식물이기 때문에 거의 다 죽고, 결국엔 연이 다 잡았어요. 이 과정이 알레로파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사례에도 식물의 경쟁 요소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나영: 경쟁 배타원리가 적용되는 것 같은데, 비슷한 서식공간과 먹이를 가진 두 개체가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면 둘 중 한 개체만 우월하게 살아남아요. 알레로파시도 같은 원리인 것 같아요.
 
다인: 동의할 수 있어요. 부레옥잠이 원래는 반 이상이었는데, 그걸 압도할 만큼 연이 센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식물 중에서도 연이 아주 세대요.
 
혜원: 동물은 먹고 먹히는 관계가 있으니까 계층을 구분할 수 있는데, 식물은 어떻게 계층을 인식하는지 궁금해요. 왜 연이 가장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지.
 
나영: 주변에 있는 식물들이 다 죽으니까요.
 
다인: 식물은 광합성을 해야 하니까, 광합성을 못 하면 죽는다고 생각해 보면, 연이 잎이 참 넓어요. 그래서이지 않을까 생각도 하고요, 제가 연 뿌리를 보니까 굉장히 두꺼워요. 또 사실 연은 수생식물이지 수상식물이 아니거든요? 근데 뿌리를 내리고 살고, 부레옥잠은 수상 식물인데 연과 경쟁하면서 뿌리를 내리는 것이 신기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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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문에서는 물리에는 역사적인 질문이 없다고 하는데, '역사적인 질문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리는 모든 것의 시초거든요? 사전을 검색해 보면, '세상 만물의 이치'라고 되어 있어요. 사실 근대 과학이 발전하여 여러 가지 식이 성립되어 있는데, 현대 물리학은 기술이 발전하다 보니까 역사적인 질문이 되는 거에요. 처음에는 사과가 떨어지니까 왜 떨어지는가 이런 것에만 관심을 가졌는데, 이런 질문이 쌓이고 발전하다 보니까 근원적인 질문을 하게 되거든요.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를 읽었는데, 이에 대한 말을 해주고 싶어요. 엔트로피 법칙 아시죠? 근데 '왜 근데 엔트로피는 증가만 해야하지?'라는 질문 해 본 적 있나요? 호킹은 시간을 물리적인 특징이 있는 것으로 다뤄요. 호킹은 시간이 빅뱅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해요. 시간은 경험적으로 느끼는 거잖아요? 물이 떨어지는 것, 늙어가는 것 같이요. 빅뱅 이전에 시간이 있었다고 해도, 빅뱅이 기존의 모든 특징이 붕괴되는 과정이기 때문에 그 때의 시간을 비롯한 물리적 특성이 어떨지 우린 알 수 없어요. 호킹은 이것을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은 빅뱅과 함께 시작되었다.”라는 말로 표현해요.
제일 인상 깊은 것은. 우리가 늙잖아요? 근데 우리는 왜 늙을까요? 시간의 요소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우리의 인지적 시각’이에요. 즉 '생각 속에 있는 추상적인 것’이죠. 두 번째는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이에요.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하기만 하죠. 세 번째는 '우주의 흐름’이에요. 우주는 팽창하고 있잖아요? 그 방향을 시간으로 봐요. 이 세 가지 관점이 왜 겹칠까요? 우리의 인지적 시간과 팽창의 방향이 동일하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서 우주가 팽창한다고 여기는 거죠. 엔트로피도 마찬가지고요. 이런 것들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게 매우 인상 깊었어요. 그래서, 물리학에서도 역사적 질문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또 하나는 이건데요. 가린이에게 블랙홀 얘기를 하면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는데?”라고 물어봐요. 근데 그건 아무도 본 적이 없어요. 볼 수 없어요. 근데 책에서는 '수학적으로 모순되지 않고 항상 관측과 일치하는 예견을 한다면 우리는 그 이론이 옳다고 할 수 있다’라고 해요. 그 말이 되게 인상 깊었어요.
 
우형: 과학에 대해서 확신할 수 없다는 말이 인상적이네요. 과학은 아무래도 인간이 만들다 보니까 물리 같은 경우는 특히 모든 과학의 시초라고 했는데, 관찰이나 도구를 통해서 따져 본다고 하는데, 아무리 따져 보아도 그걸 100% 확신할 수 있는 과학은 없다고 과학자들도 이야기하거든요. 우리가 생각해서 이론을 정립한 대로 그것이 맞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는 것이지, 그것이 진리라고는 할 수 없다고 봐요. 그리고 어떤 과학이든 사람의 관점으로 본다는 점에서도 인문학이랑 과학은 떨어질 수 없는 것 아닌가 생각했어요.
 
가린: (나영이에게) <시간의 역사> 책에 결론은 없나요?
 
나영: 설명이 어려운데요, 우주가 수축하는 환경에 있었다면, 우리는 존재할 수 없었어요. 우주가 팽창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거죠.
 
가린: 다른 물리적인 법칙에 의해서 존재하는 시간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우리 시간의 시작이 빅뱅이라고 하는 것이죠?
 
나영: 그렇죠.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시간은 빅뱅에서 시작되었다는 거죠. 제가 우형이 말을 듣고 생각난 건데, 예전에 한때 '확신할 수 없는 과학이라면 그 의미가 뭘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근데, 실수로 인해 발견된 법칙들이 있거든요? 아인슈타인이 우주항을 억지로 넣었는데,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그건 틀린 이론이었어요. 그런데 현대 물리학에서도 그걸 그대로 쓰고 있거든요? '맞았다가 틀릴 수도 있고, 틀린 건데 나중에 맞을 수도 있는 것이 과학이라면, 우리는 과학을 왜하는 거지?' 하고 생각했는데, 과학은 어디까지나 탐구이고, 틀린 것을 생각하는 모든 과정이 과학이라고 <괴짜 물리학자에게 듣는 유쾌한 우주 강의>라는 책에 나와 있었어요. 궁금해하고 증명하려 하고 가설을 세우고 하는 과정 자체가 의미있는 거라고 해요.  
 
구거투스: 그 책이 어떤 책이죠?
 
나영: 원래 천체 물리학자가 아닌데, 강연을 재미있게 하셔서 그 내용을 모아서 출간한 책이에요.
 
 
스티븐 호킹, "(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 까치(까치글방), 1998

 

다다 쇼, "(괴짜 물리학자에게 듣는) 유쾌한 우주 강의", 그린북,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