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사람이 되는 방법이 있을까요?

완벽한 사람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할까요?

아마 없겠지요?


대신, '어제보다는 나은 사람'이라는 것은 존재할 겁니다. 완벽한 사람이 될 수는 없어도, 완벽한 사람이 되는 방향으로 계속해서 가보는 겁니다. 그건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러면, 어떻게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경험하는 것도 좋겠지만, 요즘 들어 느끼는 것은 '더 많이 들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겁니다. 주변 사람들의 말을 잘 듣는 겁니다. 


어렸을 때부터 세상을 보면서 자주 하던 생각이 있습니다. 고위공무원들 비리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인데요, ―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어떻게 저렇게 많은 돈을 해 먹을 수 있지??"와 같은 것들이 그것입니다.  거대한 정치인이나 경제인들도 그렇거니와, 그에 비하면 아주 사사롭다고 할 수 있는 학교폭력 문제까지, 많은 경우, 자신이 한 일이 잘못인지 모릅니다. 주변 환경 때문일 수도 있고, 체계적 둔감화로 인한 도덕불감증일 수도 있겠지만, 주변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능력 자체가 없는 경우가 많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는 것은, 듣는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하는 대표적인 잘못입니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말들에 귀를 기울이고 성찰할 수 있어야 진정으로 들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참 오랜만에 맘에 드는 공익광고협의회의 광고를 보았습니다.[각주:1] 

"나는 맞고 남들은 틀렸다는 사람,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물으니, 대부분 부정적인 생각을 표현합니다.

그러나 다시, "그렇다면 당신은, 나와 생각이 다른 누군가를 틀렸다 한 적 없나요?"라고 물으니, 할말이 없어지는 사람들..


[상호존중과 배려_나는 맞고 남들은 틀리다편_ 30s]


뭐, 현실에서는 "난 그런 적 없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지도 모르겠지만, 

또한 광고의 의도도 '타인에 대한 배려' 딱 그만큼에 불과한 것 같지만, 그럼에도

이 광고가 감동적인 것은, 이것이야말로 사회적 갈등에 우리가 대처하는 좋은 방법이며, 교육의 목표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강자가 약자에게 귀를 기울이기.

정치인들이 시민들에게 귀 기울이기.

사장이 노조에게 귀를 기울이기.

정규직이 비정규직에게 귀를 기울이기.

부모가 자식에게 귀기울이고, 선생이 학생에게 귀기울이기.

공부 잘하는 학생이 좀 못하는 학생에게 귀를 기울이기.


평범한 시민들도, 사회의 억울한 죽음들에 귀 기울이기.

시민이, 또다른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


나는 잘 듣고 있나? 반문해 봅니다. ― 역시, 아닌 적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들어준다는 것은 상대방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과 다릅니다. 또한 문제를 해결해 준다는 것과도 다릅니다. 그저 들어주고 상대방의 처지에 공감해 주면 되는데, 그 시작이 참 어렵지요. 인사를 안 받아 준다고, 남녀차별이 심하다고, 그런 얘기들을 들었을 때 ― 아니라고, 아니라고 ― 펄펄 뛰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런 이야기들을 해주는 녀석들이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듭니다.


  1. 비슷한 주제의 공익광고가 많았지만, 막연한 메시지에, 지나치게 이미지에만 치중하는 경향이 있어 보였습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