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드맵] 겨울의 환(김채원)


'겨울의 환'(1989)의 마인드맵 정리.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프롤로그[각주:1]


"幻(환)의 의미는 변한다는 것인데 어찌보면 반복이기도 하다. 어떤 써클...조금씩 원이 다르게 그려지면서도 원이란 형태로 반복되는 것이다. 그게 대를 이으며 내려오는 여자의 인생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원을 다르게 그릴 수 있는가? 내가 고민하는 건 언제나 그거였다.

나는 내가 원하는 원을 그릴 수 있는가...?"





줄거리[각주:2] (붉은색 글은 제가 보충한 내용입니다.)


1

언젠가 당신은 제게 나이 들어가는 여자의 떨림을 한번 써 보라고 말하셨습니다. 저는 그 얘기를 지나쳐 들었습니다, 라기 보다 글이라고는 편지와 일기 정도밖에 써 보지 못한 제가 어떻게 그런 것을 쓸 수 있을까 두려운 마음이 앞섰습니다.


저는 이제껏 마흔 세 살이라는 나이가 되도록 단 한번도 스스로를 여자로 느끼지 못했습니다. 저는 단지 여자의 흉내만을 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 몹시 흥분된 상태이고, 되도록 내일 새벽까지 이 글을 마쳐 보겠다는 각오 하에 펜을 들었으므로 나오는 대로 두서없이 쓸 수밖에 없겠습니다. // 의식의 흐름


조금 전 마지막 산불 뉴스로 산불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어 예비군이 동원되고 헬리콥터까지 소화제를 뿌리는 현장을 보았습니다. 그 산불은 오늘 할머니 묘소에서 집안 아저씨와 제가 낸 것입니다.


2

어머니와 저의 손은 똑 같이 생겼습니다. 어머니는 따뜻한 밥상을 차리지 못하는 여인입니다. 이렇게 말한다면 어머니는 펄쩍 뛰실 것입니다. 어머니는 종종 자신의 손이 달아서 반찬이 맛이 있다고 자랑을 하십니다. 어머니는 교원 생활을 오래 하셨으나 웬일로인지 잠시 방황하던 시절 화투로 날을 지새셨습니다.


어린 시절의 기억 중 아버지가 우리 집에 얼굴을 보인 적이 없는데, 아버지는 작은어머니를 얻어 생활하셨고 동생이 태어나던 해 객지에서 병사 하셨다고 듣고 있습니다. 집에는 화투 손님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3

내 나이 서른 둘, 여자로서 절정일 때일까요? 화장을 하기 위해 거울 앞에 다가앉으면 가장 젊은 젊음이 은은히 울려 퍼지는 때 그런 나이에 저는 결혼생활 육 년 만에 구겨진 버선처럼 되어 친정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이가 없는 것도 큰 이유가 되겠지요. 그러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결혼예물 때문이려니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신혼여행 중 바닷가의 횟집에 앉아 어떻게 살고 싶은가 남편이 제게 물었습니다. 인격적으로 서로 존중하며 살고 싶다고 저는 말했지요. 제가 어떻게 그런 말을 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의아스럽습니다. 홀 시아버님이 돌아가시던 때의 눈, 그 눈의 아우성을 잊을 수 없습니다. 저는 현관 가득히 벗겨져 있는 문상객들의 구두를 차례로 정돈해 놓고 있다가 눈을 들었을 때 현관문 하나 가득히 새까맣게 떨어져 내리고 있는 눈을 보았습니다. // 순수함을 지킬 수 없었던 결혼 생활


4

당신을 만난 것은 그 무렵이었습니다. 당신은 제게 길을 물었지요. 당신의 부름에 잠시 멈추는 순간, 길에는 아무도 없고 당신과 저 둘만 있었습니다. 길에 있는 그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전부 멀어져 간 것입니다. 삼 일 째 되던 날 우리는 다시 만났습니다. 당신의 얼굴에서 역력한 반가움의 빛을 저는 어둠 속에서도 잘 분간해 낼 수 있었습니다.


새로 생긴 동네 지하다방에서 우리는 차를 마시고 그리고 위스키를 한잔씩 마셨습니다. 당신의 전화를 기다리기 며칠만에 드디어 당신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당신의 목소리를 듣고 저는 추운 바람이 불어오는 듯 흐읍하고 떨었습니다. 당신과 저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된 것입니다. 그것이 첫 시작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되어 어느새 3년이 지났습니다. // 어머니와 할머니가 그랬듯, 어느새 기다림의 삶을 반복하는 '나'


5

타 버린 할머니의 묘 주위 여기저기 않아서 마을 사람들은 아저씨가 권하는 담배를 땀을 닦으며 피웠습니다. 불길이 그만해서 다행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이것이 태백의 줄기일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이북5도청에 등록되어 있는 단천군민묘지, 그런 고유 명사가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실향민, 그렇습니다. 어휘 자체에서부터 느껴지는 그 짙은 이북 지방의 색채, 그 중에서도 함경도 .할머니나 어머니 고향에 대해서 거의 모르고 어떤 느낌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지 않다가도 함경도 사투리를 들으면 우선 반가운 마음이 듦을 어쩔 수 없습니다.


고향이란 정말 특이한 어떤 곳인가 봅니다. 이북에서 살다가 피난을 나와 갑자기 산 설로 물 설고 사람 선 모둔 것이 어설픈 상황에서 빚어진 그 당시 실향민의 진면목이 들어 있는 얘기들이 있습니다. 삼촌은 평소에 얌전하다가도 술을 마시면 독째로 퍼마시며 사람이 돌변하여 걷잡을 수 없이 되었습니다. 세간을 부수고 있는 삼촌을 할머니가 말리려 하다가 냅다 마당에 내 팽개쳐졌습니다. 할머니가 봉숭아 꽃 밭 위에 나가떨어졌던 장면을 제가 실제로 본 듯 합니다만 실지 보았던 것인지 아니면 얘기로 듣고 상상한 것인지 잘 분간 할 수 없습니다. 


6

6.25때 미쳐 피난을 떠나지 못했던 우리는 아버지의 친구 분이던 군인의 도움으로 뒤늦게 피난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집에 그대로 남겠다고 하셨습니다. 공산당들이더라도 늙은이 혼자 남아 있는 것을 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셨지요. 할머니는 대문 앞에서 옷고름으로 눈물을 닦으며 우리를 태운 지프차가 모퉁이를 돌아설 때까지 서 계셨습니다. 우리를 실은 차가 안보이게 되자 울음을 터뜨리셨을 것입니다. 피난지에서 돌아 온 날 밤을 상기할 수 있습니다.


칠흑 밤 속에서 우리가 두드리는 대문소리에 할머니는 한참만에 마루 끝에 나와 서서 게 누구 왔소? 게 누구 왔소? 하고 소리치셨습니다. 할머니. 할머니...우리가 부르는 소리에 할머니는 허겁지겁 대문을 열러 나오셨습니다. 이게 누구냐. 이것들이 살아 있었구나, 결국 살아서 보게 되는 구나, 이렇게 중얼거리시면서... 할아버지는 타관에서 첩을 얻어 사시고 할머니는 일찌감치 체념하며 살아오신 것일 거예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여자가 딸 셋에 외아들을 데리고 그 어려운 시대를 살아온 고난의 세월을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그 후 얼마 안되어 할머니는 이를 닦으시다가 갑자기 쓰러지셨고 며칠동안 의식 없이 누워 계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7

어머니와 저의 싸움이 봄철에서 여름철, 가을철로 접어들었다가 겨울, 봄에 이르기까지 몇 해인가 거듭했지요. 싸우고 또 싸우는 동안 어머니는 드디어 쓰러지셨습니다. 그러던 어머니는 비교적 쉽게 입이 제자리에 돌아오고 마비로 풀렸습니다만 워낙 아프던 관절 때문에 다리에 더욱 힘을 잃고 침대에 드러눕게 되었습니다. 화장실 출입만 겨우겨우 하셨지요.  // 어머니가 할머니에게 그랬듯, '나'도 똑같이 하고 있음..


이제는 어머니와의 싸움을 화해로 이끌어 가고 싶은 기분이 조금씩 들기도 합니다. 이 화해를 하고 싶은 기분이란 당신과의 결별이라는 또 다른 의미는 내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어머니와 이제 화해를 한다고 해도 함께 산다는 것은 속박일 뿐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런 삶을 제가 사는 것이겠지요. 소멸해 가는 어머니를 담당하는 것이 저의 운명이라 생각합니다. 그 옛날 어머니가 몸이 아파 조용히 있고 싶다고 할머니를 이모댁에 가시게 한 것도 다로 그런 연유가 아니었을까 지금 생각해 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사랑하는 당신. 당신이 잃어 가는 것은 무엇인가요. 당신은 옛집을 찾아 오셨나요? 저는 이 순간 당신을 비롯한 모든 사람이 실향민이라고 느껴집니다. (실향민.. 어쩌면 마음의 정처를 잃어버린 사람이라는 뜻은 아닌지..)

(1989년)




해설[각주:3]


1989년 8월 『현대문학』에 발표된 김채원의 중편소설로 '밥상을 차리는 여인'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1989년도 이상문학상 수상작이다. 이 작품은 나이가 들어 마흔 셋이 된 중년의 여자를 화자로 등장시켜 자신이 살아온 과정을 고백적 형식으로 서술하게 한다. '언젠가 당신은 제게 나이 들어가는 여자의 떨림을 한번 써보라고 말하셨습니다.'라고 이야기가 시작된다. 여자는 마흔 셋의 나이에 들어서야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발견한다. 그 자각의 과정에 대한 담담한 고백적 진술이 소설의 내용에 해당한다. 여자의 어머니와 외할머니는 모두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했으며, 외할머니는 제대로 모시지 않고 이모에게 보내 버렸으며, 외할머니는 거기에서 운명했다. 여자가 어머니의 불효에 대해 항의하자, 어머니도 쓰러진다. 여자는 자신도 어머니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여자는 이제 따뜻한 밥상을 기다리기보다 밥상을 차리는 여자가 되겠노라고 다짐한다. 이러한 이야기에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고백한다는 것은 곧 현재의 자신과 거기에 이르는 다단했던 과거의 역정들을 되돌아 보고 성찰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추억 속의 물상들을 둘러싸고 있는 반성과 회상의 분위기가 형성된다.


이러한 분위기는 바로 현재적 삶의 의미에 대한 물음으로 연결되며 앞으로 걸어가야 할 삶의 방향을 암시하는 데에까지 나아간다. 여자는 어머니가 할머니를 이모네 집으로 보내 버렸던 것은 점점 소멸해 가는 할머니의 형상을 더이상 감당하기 어려웠던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할 정도로 어머니를 이해하게 된다. 이제 여자에게 남은 것은 결핀된 것으로서가 아닌, 베풀어야 할 것으로서의 사랑이다. 여자가 말하는 따뜻한 밥상이라는 것도, 그리고 다시 만난 옛날 이웃 동무인 '당신'에 대한 애틋한 정도 모두 이 사랑으로 연결된다. 마흔을 넘은 여자가 가질 수 있는 그 깊은 사랑이야말로 소설의 서두에서 말한 '나이 들어가는 여자의 떨림'의 실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2011. 1. 24. 국포유에 작성한 글

  1. 출처, http://blog.naver.com/nasza93/60094364018 [본문으로]
  2. 출처, 네이버 용어 사전 > 한국현대문학대사전(권영민) [본문으로]
  3. 출처, 네이버 용어사전 >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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